KS시대 가고 DS시대가 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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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12면

올 1월 중순 서울 논현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대원 법조 동문회’에 판사·검사·변호사 110여 명이 모였다. 같은 재단인 대원고·대원여고 출신을 제외하고 대원외고 졸업생만 80명을 넘었다. 김윤상 부산지검 부부장 검사(38·사법시험 34회·대원외고 2기)는 “10여 년 전만 해도 대원외고 출신 법조인은 열 명 남짓에 불과했다”며 “요즘은 한 기수에 30~40명이 되니 후배들의 힘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5년 사법시험 합격자, 대원외고 163명으로 선두…한영외고ㆍ대일외고도 5위 안에 포진

법조계에 외고 출신 돌풍이 거세다. 법률신문사가 발간한 ‘한국법조인대관’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사법시험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는 서울 대원외고로 163명을 합격시켰다. 이어 대입 검정고시 출신 72명, 한영외고 66명, 순천고 55명, 대일외고 44명이다. 5위 안에 서울지역 외고가 3개나 포함된 것이다.

열 명 중 한 명은 외고 출신

2006년까지 현역 법조인 1만4831명 중 가장 많은 법조인을 배출한 고교는 경기고로 417명이다. 경북고(305명), 전주고(256명), 서울고(220명), 대입 검정고시(215명), 대원외고(204명), 광주제일고(203명) 등이 뒤를 잇는다.

그러나 올 1월 판·검사 등으로 임용된 법조인(사법시험 46회)을 살펴보면 대원외고 출신이 41명으로 가장 많다. 한영외고와 대일외고가 20명, 13명으로 뒤를 이었다. 외고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도 43회 3.1%(30명), 44회 5.2%(52명), 45회 8.3%(76명), 46회 10.0%(100명), 47회 12.6%(123명), 48회 13.5%(131명)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반면 46회 중 경기고·경북고·서울고 등 전통의 명문고는 각각 3명, 3명, 10명에 불과했다. 이렇다보니 KS(경기고, 서울대) 대신 DS(대원·대일외고, 서울대)가 부상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전체 법조인 수에서 대원외고가 경기고를 제칠 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외고 출신 법조인이 많아진 데는 학생의 부모 직업이 판사·검사가 많은 것과 무관치 않다.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 소재 대원·대일·명덕·서울·이화·한영외고 등 6개 외고의 재학생 학부모 중 법조계 종사자는 2.7%다. 전체 직업인 중 법조인 비율이 1% 미만인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다.

폐쇄적 동문 모임 변질 우려

‘외고 돌풍’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시각도 있다. 특정 학교 졸업생들끼리만 뭉치는 문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영외고 등도 법조 동문회 모임을 열면 100여 명이 모인다.

서울 서부지법의 한 판사는 “몇몇 학교 출신이 많아지면 다른 판사들이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경기고 등 법조 명문고가 있는데 새삼스럽게 외고 출신들에게 거부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영외고 출신 김모(29) 변호사는 “외고 졸업생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과거 법조의 명문고와 달리 결속력이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어에 능통한 인력 양성이라는 설립 목적을 생각할 때 외고 출신 법조인이 너무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김윤상 검사는 “입시제도와 사회구조가 기형적인데 외고가 제 역할을 못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부당하다”며 “외고 출신 법조인들은 법률시장 개방과 늘어나는 국제 소송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시장 개방 시 긍정적 역할 할 것”

실제로 외고 출신 사법연수생이 졸업 후 로펌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다. 사법시험 46회의 경우 로펌에 취업한 사람은 16.0%(998명 중 160명)인 데 비해 외고 출신은 22%(100명 중 22명)다.

로펌도 법률시장 개방을 앞둔데다 외국 기업과의 송무가 늘어나면서 외고 출신을 선호한다. S법무법인의 경우 올해 선발한 9명 중 4명이 외고 출신이다. 사법연수원 윤성식 교수는 “외고 출신들의 뛰어난 외국어 능력을 로펌이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 인수·합병(M&A) 관련 송무를 담당하며 영어로 작업할 때가 많다는 법무법인 태평양의 김남희(29·사법시험 42회·한영외고 영어과) 변호사는 “고교 때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들이 많아 외국 문화에 익숙해질 기회가 많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며 “외국 기업에서 일하는 동창에게서 많은 조언을 듣는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세종의 주민정(27·사법시험 46회·대원외고) 변호사는 최근 일본에서 온 소송 의뢰인의 통역을 담당했다. 주씨는 “외고 출신이기 때문에 외국어 능력이 뛰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며 “해외 로펌과의 경쟁에서 외국 기업들을 대할 때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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