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에 담긴 숨결만은 살리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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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16면

그 흙을 옮겨서라도 향수와 전통의 맥을 이어가자. 서울시 중구 을지로 7가 1번지. 동대문야구장에 스며 있는 ‘조상의 빛난 얼’을 그대로 공중에 날려버리지 말자. 101년 한국 야구의 숨결과 정취, 흔적과 추억이 그 벽돌 하나 하나에 숨쉬고 있지 않은가.

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2> 벽돌에 담긴 숨결만은 살리자

지난 19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상우 총재, 대한야구협회 이내흔 회장 등은 오는 11월 동대문야구장 철거 및 대체구장 건설에 대한 상호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동안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동대문구장 수호 100만인 서명운동’을 펼치는 등 각계에서 동대문야구장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19일 결정은 서울시의 정책에 대한 야구계의 양해 및 동의가 이뤄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서울시와 야구계가 동대문야구장을 없애고 대체구장을 건설하는 데 뜻을 모았다고 해도 ‘철거’라는 끔찍한 단어를 사용한 것은 가혹하다. ‘철거’는 무너뜨려 없애거나 걷어치운다는 의미다. 우리의 눈앞에서 그 소중한 기억이 담긴 야구의 고향을 없앨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기억에서마저 동대문야구장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대문야구장은 다른 지역의 대체구장으로 ‘이전’되는 게 옳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옮겨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그곳에 담긴 소중한 역사가 맥을 잇고, 가치를 보존할 수 있다. 전설의 홈런왕 이영민이 때린 한국 야구 1호 홈런이, 그 더그아웃 계단을 밟고 오른 수많은 한국 야구 영웅들의 흔적들이 역사의 이름으로 우리의 가슴에 남아있을 수 있다.

2005년 11월, LA 다저스는 구장 개축을 앞두고 광고를 냈다. 관중석 의자를 판매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저스는 그때 30년이 지난 구장의 의자를 좀 더 편안한 현대식 의자로 교체하는 공사를 계획했다. 그리고 의자를 그냥 없애버리기보다는 그 정취와 추억을 팬들에게 돌려주자는 의미로 팬들이 구입해서 보존할 수 있게 했다. 내야석 의자 2개를 250달러에, 더그아웃 근처 자리의 의자 2개를 500달러에 팔았다. 물론 그 수익을 구단의 이익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 수익은 다저스의 지역봉사와 사회환원을 위한 재단의 기금으로 쓰였다. 팬들은 역사와 추억을 사고, 구단은 그 돈으로 사회공헌을 할 수 있었다. 다저스의 그런 ‘추억 마케팅’을 그대로 대입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그와 유사한 다른 보존의 노력은 할 수 있다고 본다.

새로 짓는 야구장에 동대문야구장에서 가져간 의자로 한 구역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을 ‘동대문 구역’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곳에 앉아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의 기적을 추억하고, 까까머리 고등학생 선동열의 노히트 노런을 되새겨보면 어떨까. 지금 동대문야구장에 깔려 있는 흙을 옮겨 새로 만들어지는 구장의 탯줄로 이어지게 하면 어떨까. 외야 펜스의 파울 폴, 참가 팀의 교기가 걸리던 그 게양대라도 옮기면 동대문의 흔적을 느끼고, 숨결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동대문야구장의 무작정 철거는 안 된다. 그 벽돌에 살아있는 역사의 숨결은 어떻게 하든 살려서 이어가야 한다. 그건 후손들에게 야구의 멋과 가치를 남겨준 선조들에 대한 예의이자 미래에 대한 책임이다.

네이버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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