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 위로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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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07면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는 전 세계 인권운동가들이 애창하는 노래다. 우리나라 그리스도교인들이 가장 애창하는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바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로 시작하는 ‘올드 랭 사인’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5음계로 되어 있다.

지난 2월 23일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제목의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됐다. 영국의 노예무역 철폐 주역인 윌리엄 윌버포스(1759~1833)의 투쟁을 다뤘다. 이 영화는 세계복음주의연맹(WEA) 등 그리스도교 단체의 성원에 힘입어 개봉 3주 만에 1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75개 그리스도교 단체들은 영화 홍보와 더불어 인신매매와 강제 아동노역에 반대하는 ‘어메이징 체인지(The Amazing Change)’ 운동을 펼치고 있다.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윌버포스는 케임브리지대학 출신으로 불과 21세에 국회의원이 된 인물이다. ‘거듭남’을 체험한 후 1787년부터 노예제 폐지에 목숨을 걸었다. 그가 10년 동안 9차례나 발의한 노예무역폐지 법안은 1807년에 통과됐다. 그러나 대영제국에서 노예제 자체의 폐지가 확정된 것은 1833년 7월 26일이었다. 윌버포스는 이틀 후 사망했다. 윌버포스는 사형제 제한, 아동노동 폐지, 교도소 환경 개선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그러나 영국 내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이나 노조활동 문제에 대해선 비교적 냉담한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노예제 폐지 운동은 런던에 운동본부를 두고 지방에 지부를 두는 식으로 전개됐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방식이었다. 이 운동 방식은 전 세계 민권운동 조직의 원형이라고 한다.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작사가는 존 뉴턴(1725~1807)이다. 한때 노예선 선장으로 노예무역에 종사하기도 했던 뉴턴은 폭풍우 속에 배가 침몰할 뻔한 위기를 만났다. 이를 계기로 회심(回心)한 그는 영국 성공회 신부가 됐다. 그리고 윌버포스에게 영향을 미쳤다. 윌버포스는 당초 정계를 은퇴하고 성직자가 되려고 했다. 그런 윌버포스를 설득해 대신 노예제 폐지를 위한 의정활동에 매진하도록 독려한 게 바로 뉴턴이다. 한편 뉴턴은 토마스 아 켐피스가 쓴 『그리스도를 본받아(遵主聖範)』를 읽고 회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말 번안 가사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로 시작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오늘날에도 삶을 빼앗긴 1230만 명의 노예가 우리 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인류에게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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