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황금시장」을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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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유럽 등지의 세계적 민간항공기 제작회사들이 동아시아로 날아들고 있다.
걸프전·경기침체 등으로 90년 이후 수렁에 빠져들었던 국제항공기수요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하면서 특히 「황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동아시아권을 선정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요즈음 미국의 보잉·맥도널더글러스(MD)나 유럽 에어버스 등 국제항공기 제작3사의 홍보맨들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대만 등 극동지역 항공사 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다. 이들은 세미나·설명회 등을 개최해 신형항공기 선전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관광이 곁들여진 「향응성」공장견학 등으로 구매관계자의 환심사기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
아시아권에선 「큰손님」으로 통하는 대한항공의 경우 조중훈 한진그룹회장이 유럽방문 길에 에어버스본사가 있는 프랑스 툴루즈에 들르기라도 하면 시장까지 나와 「국빈」대접을 해줄 정도다.
MD사의 여객수요전망에 따르면 인구밀도가 높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여객수요(역내외 포함)는 지난 90년 전세계 총수요 8천8백36억RPK(여객×㎞)의 43·4%를 차지할 정도로 이미 거대시장을 형성했다.
여기에다 그간 비약적으로 성장한 동아시아항공사들이 역외항공사에 빼앗겼던 여객물량을 되찾기 위해 여객기 확보에 활발히 나설 전망이다.
보잉의 자체분석에 따르면 지난 70∼89년에 전세계항공기 도입액의 14·1%를 차지하는데 그쳤던 아태지역 항공사들은 90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21·0%까지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만 해도 작년말 현재보유하고 있는 여객기 대수 만큼인 76대를 올해부터 99년까지 8년 사이에 도입할 계획이다.
특히 80년대 후반부터 아시아각국에서 속속 탄생한 제2민항이 항공기의 대량 수요처로 한몫 톡톡히 하고 있다.
86년 설립된 일본 ANA(전일항) 항공의 경우 작년말 현재 1백8대를 도입해 기존 JAL의 보유대수를 추월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88년 설립된 한국의 아시아나, 대만의 EVA항공이 각국의 제1민항을 따라잡기 위해 항공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게다가 아시아항공사들은 부가가치가 높은 대형항공기를 선호해 시장으로서의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이에 따라 항공기제작3사는 나름대로 개발중인 3백50∼4백석 규모의 대형항공기판촉에 사운을 걸고 있다.
보잉은 지난달 L일 홍콩 캐세이퍼시픽 항공으로부터 B-777기 22대를 무더기로 수주했는데 이를 계기로 항공기제작3사가 더욱 눈에 불을 켜고 아시아로 몰려들고 있다.
유럽의 자존심을 걸고 미국보잉 등에 도전장을 내놓고 있는 에어버스는 『2010년이 되면 아시아지역 여객기의 평균 좌석 수가 현재의 2백28석에서 3백34석으로 늘어날 것』으로 나름대로 전망하고 지난해10월 처녀 비행한 A-340의 판촉에 2000년대의 사활을 걸고 있다.
대형여객기 부문에선 가장 뒤진 MD사도 대만과 손잡고 MD-12기종개발에 뛰어들어 맹추격을 벌이고 있다.
걸프전과 세계적 경기 침체 등으로 전세계항공기 총 주문이 지난90년 1천2백28대에서 지난해엔 3분의1수준인 4백67대에 그치는 등 사상최악의 실적을 보였던 국제항공업계는 아시아공략을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있는 것이다. <홍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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