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자금경색 이대로 좋은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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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의 금융정책과 대기업정책은 기업측에서 보면 기업의 자금숨통을 죄기 위한 일대 캠페인이라도 벌이는 것 같은 형국이다. 기업들은 지금 투자를 위한 자금은 말할 것도 없고 운영자금의 구멍을 메우기에도 아슬아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결과를 빚어낸 금융긴축과 재벌규제정책은 물론 당당한 논거에 입각하고 있다. 분에 넘치는 겉치레 성장을 막고,물가를 안정시켜야 하며,경제력 집중의 폐단을 줄여 나가야 한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위성을 십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기업의 투자위축과 금융비용 증대라는 대가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커지는 것은 경제전체를 위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제조업 설비투자가 급속도로 식어가는 현실을 더이상 방치해선 안되겠다. 통계청이 발표한 1·4분기 산업활동 동향에서도 기업설비투자의 선행지표인 설비용 기계류 수주액과 기계류 내수출하의 증가율은 2%에도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의 설비투자에 큰 차질이 생기고 있는한 제조업의 기술개발이나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우리경제의 지상과제에도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고 공급증대를 통한 장래의 물가안정 효과라든가,성장기반의 확충도 기대하기가 어렵다.
기업의 자금줄은 한꺼번에 거의 완전히 막혀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식과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은행의 돈줄죄기,외화대출 제한,상업차관 금지,기업자체의 수출 및 내수판매부진까지 겹쳐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재미를 보는 쪽은 급전을 대주는 사채업자들이다. 단돈 천만원이 없어 부도직전의 중소기업이 월 7%의 금리로 사채를 끌어쓴다는 최근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기업의 돈가뭄속에서 작년 한햇동안 은행·단자·종금 등이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는 사실도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궂은 일로 지새야 하는 제조업보다 돈장사가 훨씬 유리한 방향으로 우리경제구조를 바꿔 놓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는 물론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더 늦기전에 적어도 기업투자의 지나친 냉각을 멈추게 할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 통화량 자체를 걷드리기가 어렵다면 생산활동쪽으로 돈이 제대로 흐르도록 하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주택금융을 비롯한 소비부문 금융이 산업활동을 직접 뒷받침하는 금융보다 더 우대받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 다시 저울질해 볼 필요가 있다.
자금난 말고도 기업투자를 위축시키는 갖가지 요인들이 동시에 몰려닥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깊은 헤아림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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