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열린우리 된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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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재.보선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국회의원 3, 기초단체장 6, 광역의원 9, 기초의원 38명 등 총 56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은 모두 23명이 당선됐다. 한나라당 당선자는 22명이었다. 16곳에만 후보를 낸 열린우리당은 기초 의원 1명만 당선됐다.

과거 재.보선과 비교해 보면 한나라당으로서는 충격적인 결과다. 2004~2006년 치러진 여섯 차례의 재.보선에서 전체 당선자 113명 중 한나라당은 73%(81명)를 차지했다. 2005년 10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선 4곳에서 모두 당선돼 100% 당선율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의 당선율은 39%에 불과하다. 반면 무소속의 경우 2004년 10월, 2005년 10월, 2006년 7월 재.보선에선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대박'을 냈다. 한나라당 후보들의 득표율도 30%대가 대부분이었다. 과거엔 대체로 50%대였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따져 보면 따져 볼수록 지독한 패배다. 마치 우리 당이 과거 재.보선에서의 열린우리당이 된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보선은 지지층의 결집이 승리의 관건인데 선거 막판 사흘 동안 각종 악재가 잇따라 터지자 한나라당 지지층이 투표장을 찾지 않았다"며 "과거 재.보선에선 '반(反)노무현, 반열린우리당' 세력의 결집이 선거 결과를 갈랐는데 이번 선거엔 반한나라당 정서가 넓게 깔렸다"고 분석했다.

◆ '텃밭' 변화 조짐=한나라당은 주된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지역과 서울 양천구에서도 크게 패했다. TK는 "한나라당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곳"으로 통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선거가 치러진 10개 선거구 중 7개 지역에서 무소속이 당선됐다. 기초단체장 1곳, 광역의원 1곳, 기초의원 5곳이다.

봉화군수에 약사 출신인 무소속 엄태항 후보가 당선된 것을 비롯, '과태료 대납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대구 서구 광역의원 선거에선 무소속 서중현씨가 꽃다발을 안았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의 지역구인 이곳에서 서씨는 국회의원 선거 다섯 번, 구청장 선거 세 번 등 여덟 번 도전해 실패했다 이번에 당선됐다. 9수(修) 끝의 당선이다. 한나라당 경북도당 관계자는 "TK 지역의 경우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들의 분열이 워낙 심해 '두나라당'이란 얘기까지 나온다"며 "이런 당내 상황이 선거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청장의 경우 한나라당은 국회의원을 지낸 오경훈 후보를 공천했지만 무소속 추재엽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양천구는 노무현 정부 들어 아파트값이 가장 많이 오른 '버블 세븐'의 하나인 목동이 있는 지역이다. 서울 강남과 더불어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였던 곳이다. 국회의원 보선이 치러진 대전 서을도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여 왔던 아파트 밀집 지역이지만 승리는 국민중심당으로 넘어갔다.

◆ '복수혈전'도 한몫=양천은 한나라당 대선 주자인 원희룡 의원(양천갑)의 지역구가 있는 곳이다. 당선된 추재엽 후보는 2002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구청장이 됐으나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선 공천을 받지 못했다. 당 주변에선 "원 의원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것도 공천 탈락의 한 요인"이란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이훈구 구청장이 학력 허위 기재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받으면서 추 후보로선 '복수'의 기회가 생겼다. 당에선 "원 의원의 대선 도전이 큰 난관에 봉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봉화군수 당선자인 엄태항 후보는 1995년과 98년 무소속으로 봉화군수에 당선된 바 있다. 엄 후보는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입당 신청서를 냈지만 경북도당으로부터 거절당하자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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