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준조세 부담 없애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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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영환경의 악화로 인해 기업이 감수해야 하는 고통은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커지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업계 전반을 휩쓸고 있는 인력난·자금난·판매부진 속에서 중소기업과 영세기업들은 몸살을 앓고 있다.
대기업의 임금수준을 쫓아갈 힘이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 인력의 신규충원은 커녕 기존의 종업원을 지키기조차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금융긴축 정책으로 인해 기업자금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마저 겹쳐 중소기업의 경영난은 실로 심화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금융기관의 신용평가나 담보능력 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중소기업에 돌아갈 기업자금의 몫은 극히 한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당연한 결과로 부도와 도산의 위기에 빠져드는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는동안에도 중소기업들이 엄청난 준조세를 부담하고 있었다는 조사결과는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기협중앙회와 업계의 비공식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업체당 연평균 준조세 부담은 매출액의 0.8%에 해당하는 4천5백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은 중소기업 연구개발비의 네배가 넘는 금액으로 이 금액을 모두 기술개발 투자로 돌릴 수 있다면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능력은 지금보다 현저히 강화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중소기업이 부담하는 준조세는 크게 두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일선 행정기관의 규제와 단속을 쉽게 넘어가려는 기대하에 일정금액을 정기적으로,또는 수시로 납부하는 것이고,또 하나는 각종 지역단체와 지역행사를 위한 기부금과 찬조금이다.
중소기업을 포함해서 기업활동 전반에 적용되는 행정규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상황속에서는 기업이 전모를 파악하기조차 힘든 규제내용들을 일일이 준수하기 보다는 담당관청에 돈을 주고 잘봐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판단하기가 십상이다.
기업의 창업과 경영활동의 무대는 언제 걸려들지 모를 수 많은 함정의 밭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정부는 그동안 기업의 준조세 경감과 행정규제 정비를 여러차례 강조해 왔고 실제로 구체적인 조치들을 내놓기도 했지만 중소기업의 준조세 부담현실에 대한 조사결과는 그러한 조치들의 실효를 의문스럽게 하고 있다.
준조세의 무거운 부담을 방치해둔채 중소기업 육성을 아무리 큰 소리로 외쳐봐야 그것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이 기회에 준조세의 근원이 되고 있는 각종 인허가 절차와 기업에 대한 온갖 단속·규제내용들을 과감히 정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일선 행정관서들이 걸핏하면 지역내 기업들에 기부·찬조명목으로 손을 내미는 관행도 이제 말끔히 청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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