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영화박물관 절실하지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한국영화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야심 차게 내놓은 영화발전기금이 시작부터 편법 논란에 휩싸이게 생겼다.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영상자료원이 추진 중인 영화박물관에 영화기금 20억원을 지원하는 게 법적으로 옳으냐 하는 것이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기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심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지적이다.

영화기금은 국민의 세금과 관객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합친 것이다. 이미 세금에서 1000억원이 배정됐고, 7월부터는 극장 입장료에서 3%를 떼어갈 예정이다. 따라서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는 일이 없어야 하는 귀중한 돈이다.

논란이 되는 것은 영상자료원이 해야 할 일을 정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의 제34조다. 이 법에는 영상자료원이 국내외 영상자료를 수집.보존.활용하는 사업을 할 때 '필요한 경비는 국고에서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기금은 국고가 아니다.

김종현 문광위 수석전문위원은 기금 검토보고서에서 "기금계획운용안상의 영상자료원 사업은 영화기금의 사업이 아닌 영상자료원 고유의 사업이다"며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당해 사업들에 대해 국고가 아닌 영화기금을 통해 지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국고와 영화기금에서 지원할 사업이 따로 있는데 어째서 법적 근거도 없이 섞어 쓰느냐는 것이다. 이 부분은 지난해 영상자료원 국정감사에서도 여러 의원이 지적한 사항이다.

영화박물관의 재원 확보는 지난해 정부 예산편성 때부터 줄곧 문제가 됐다. 애초 문화부는 국고 지원을 신청했지만 기획예산처는 영화기금에서 쓰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그러나 국회 문광위에서 논란이 되자 정부 예산에 64억원을 늘리는 안을 만들었지만 최종 국회통과 과정에서 33억원만 반영됐다. 그래서 모자란 돈을 충당하기 위해 기금에서 20억원을 쓰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영화박물관은 그 자체로 필요한 사업이긴 하다. 오히려 이제야 박물관을 세운다는 것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

영화기금에 대해 한마디만 더 하자. 최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기금사용 계획은 지난해 10월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공동으로 발표한 것과 심하게 차이가 난다. 지난해 발표에선 영화산업 진흥을 위해 올해 938억원을 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절반도 안 되는 440억원만 반영됐다. 애초 발표 액수가 지나치게 부풀려졌던 것인지, 아니면 무슨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기금을 한 푼이라도 아껴쓰는 것은 좋다. 단순히 돈을 얼마 퍼붓느냐보다 내실을 기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정책의 집행을 놓고 정부가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을 리는 없다.

주정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