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유학생 망명요건 갖췄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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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모스크바대학에서 해양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북한유학생 한명이 러시아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해 러시아와 남북한 사이에 미묘한 외교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는 현재의 남북관계가 비교적 순조롭고 한소 수교이후 최초의 공개적 망명요청인데다 앞으로 해외체류 북한인들의 탈출 및 망명사건이 속출할 분위기여서 러시아정부의 대응조치가 극히 주목된다.
문제의 북한유학생 김명세씨는 작년 10월 귀국명령을 받고 이를 거부,단체생활에서 이탈하여 은신해 오다가 지금은 한인 침례교회 이철수목사의 아파트에 피신중이다.
그는 망명동기를 『북한은 자유가 없는 거짓사회이며 특히 종교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결코 돌아갈 수 없다』고 밝히고 옐친 러시아대통령에게 사신을 보내 망명을 허용해 달라고 호소했다.
러시아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두고볼 일이나 우리는 일반화된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따라 원만하게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지금까지의 국제법이나 관례는 정치적 또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났고,송환되면 정치적 고려에 의해 중형에 처해질 위험이 명백할 경우 정치적 망명권을 부여하여 피난처를 제공하고 본국에 인도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최근들어 망명권의 적용범위는 더욱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유엔은 67년 12월14일 총회결의를 통해 「외국영토상의 망명권에 관한 선언」을 선포하여 「모든 인간은 다른 나라 영토에서 정치적 망명권을 갖는다」고 밝히고 「이런 망명권 부여가 평화롭고 인도적인 행위인 경우 타국에 비우호적인 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문제의 김씨는 북한의 정치체제는 기본적 인권사항인 자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거짓이 많아 양심상 그곳에서 살 수가 없어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북한당국의 허가없이 종교생활을 하고 있어 이것 또한 북한에서는 처벌대상이 되어 「종교적 박해」의 조항에도 해당된다.
더구나 그의 도피사실이 널리 공개되었기 때문에 북한에 돌아가면 정치적인 이유로 중형에 처해질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사람은 국제법의 망명권이나 피난민보호 차원에서 보호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더구나 모스크바의 북한공관 요원들은 김씨를 납치하기 위해 그를 보호중인 이 목사의 집을 포위하고 이 목사를 위협하는 불법마저 자행하고 있다.
러시아정부는 이런 위협행위에 좌우되지 말고 과거 다른 동구국가들이 탈출한 북한 유학생들에게 망명권을 허용했던 전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김씨문제가 국제법과 국제판례에 맞게 합리적으로 처리되기를 기대하면서 러시아정부의 조치를 주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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