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골프연습장은 일부 교사 위한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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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에 설치된 골프 연습장이 학생들을 위한 교육 공간이 아니라 일부 교사들을 위한 여가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학교 골프 연습장의 이용 실태는 물론 시설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21일 포털 사이트 다음의 아고라(agora.media.daum.net) 게시판에는 울산의 모 고등학교에 마련된 골프 연습장과 관련된 글과 사진이 올라왔다.

네티즌(ID ii싹아지ii)은 "학생들이 풋살(실내축구)하던 장소에 골프장이 들어섰다"며 "체육 교사들과 골프를 치는 선생들께서 자랑스럽게 설치했다"고 썼다. 댓글에는 같은 상황을 호소하는 학생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안산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라 밝힌 네티즌(ID Bill)은 "우리 학교도 수행평가 한답시고 골프장을 설치했는데 선생님들 말고는 거의 쓰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또 다른 네티즌(ID 이쁜구슬)도 "저희 학교도 골프부 만든다고 골프장이 생겼는데 수업시간에 강의 없는 선생님들만 거기서 놀아요"라는 댓글을 썼다.

하지만 학교 관계자들은 골프 연습장을 설치한 것은 학생들의 체육 교육을 위해서라고 입을 모은다.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교사의 이용을 허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울산의 모 고교 관계자는 "체육 교과과정에 골프가 나온다"며 "새로 개장한 골프 연습장은 골프를 치고 싶은 학생들에게 개방하고 있으며 수업시간에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안산의 고등학교 관계자도 "1학년과 3학년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골프 연습장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내에 설치된 골프 연습장을 보는 학생과 교사의 시각은 크게 다르다. 하지만 이를 관리할 교육 당국은 대책마련은커녕 현황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1년에 한 번씩 조사하는 체육시설 통계에 체육관과 수영장은 포함돼 있지만 골프 연습장 항목은 없다"고 밝혔다. 또"일부 학교에서만 골프장을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선 시.도교육청도 비슷한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울산시교육청의 관계자는 "각 학교의 골프 연습장 현황까지는 파악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의 한 관계자는"학교 직원복지 차원에서 여유 공간을 활용해 교사들이 이용하는 골프 연습장을 짓는 경우는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교사용으로 개조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관리 감독 사례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이모(45)씨는 "골프가 대중화된 시점에서 체육 시간을 이용한 골프 교육은 환영할 만하다"면서도 "교육을 핑계로 골프 연습장을 만든 다음 교사들만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또 "누군가가 지켜보지 않는다면 교육 목적과는 다르게 쓰일 수도 있다"이라며"교사보다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교육당국의 관리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교 시설 전문가인 한국교육개발원 조진일 박사는 "학교 내 시설이라면 그 시설을 사용할 사람들과 환경 및 운영에 대한 사전 검토가 있었을 것"이라며 "시설을 갖춘 다음 학생들이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면 운영상 예측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 박사는 또 "시설 개장 후에 만족도를 평가하는 '사용 후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면 다른 시설에서도 참고할 수 있어 효과적"이라고 전했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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