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라 1상자만 남은 「8년 고생」/술소매점 운영 조봉엽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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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광란폭도 진열대 마저 실어가/늑장출동 경찰 “안죽은게 다행”
『8년간 강도도 수차례 당해가면서 밤 늦게까지 고생고생해 모은 재산이 눈앞에서 모두 털리는데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 눈물도 나지 않는다는 조봉엽씨(54). 후버와7가 코너에 있는 쇼핑몰 「7가리커」를 운영해온 조씨는 1일 새벽 50여명의 폭도들에게 콜라 한상자만 남기고 20여만달러의 재고를 모두 털렸다.
『새벽에 가게가 털린다는 이웃 업소의 전화를 받고 뛰어나왔습니다. 개미떼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들더군요. 그 두터운 철문은 산산조각이 났고 폭도들은 잔칫날을 만난 것 같았어요. 몇번 소리도 질러봤지만 밟혀죽지 않은게 다행입니다.』
경찰이 전혀 출동조차 않아 가게 밖으로 떼밀려 30분동안 가게가 벌거숭이가 되어가는 모습을 빤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조씨는 폭도중에는 단골고객도 있어 기가 막혔다.
『악이 받쳐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아무나 목덜미를 잡아채기도 했어요. 갑자기 뒷골에 차가운 느낌이 들어 돌아봤더니 한 히스패닉계가 총을 들이대고 있더군요.』
50줄이 넘을 때까지 이런 처참한 수모는 처음 겪어봤다는 그는 폭도들은 자기네들끼리도 훔친 물건을 서로 빼앗는 싸움을 벌이더라고 전한다.
『정확히 30분동안이었어요. 차까지 들이대고 있는 물건이라곤 모두 털어가는데 맨 마지막에 10살도 채 안돼보이는 히스패닉계 아이가 콜라 한상자를 들고 뛰어나오더군요. 그제서야 가게 앞으로 다시 다가설 수 있었어요. 이 아이가 놀라서 놓고 달아난 콜라 한 상자가 남은 것의 전부입니다.』
폭도가 가게를 휩쓸고 간후 가게안을 들여다보니 진열대조차 없어졌다는 조씨는 미국이라는 곳에 만정이 떨어졌다고 한숨을 쉰다.
『이곳으로 이민온후 내내 잠도 제대로 못자고 모은 재산입니다. 앞날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폭도들이 다 사라진후 30분쯤 지나 순찰차 한대가 나타나 안됐다는 표정을 짓고는 그대로 또 가버리더라는 조씨는 샌피드로에 있는 우정의 종각에 6·25참전 미군추모건립비 모금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자신이 이때처럼 한심한 생각이 들때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게 우리 한국을 도와준 미국의 참 모습입니까. 경찰이 「죽지않은게 다행」이라는 말만 하더군요. 눈 앞에서 가족이 흉악범에게 겁탈당하는 것과 다를게 뭐가 있습니까.』
◎「가주마케ㅌ」 경비 석종수씨/무법천지서 믿을 건 우리들뿐/폭도와 총격땐 흡사 서부활극
흑인폭도들과 히스패닉계들의 방화와 약탈로 폐허가 된 한인타운에서 그래도 몇군데의 상가가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실의에 빠진 한인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샷건으로 무장한 한인들을 옥상에 배치해 흑인폭도들을 물리쳤던 「가주마케ㅌ」이 그 대표적인 케이스. 특히 이곳에서의 한인무장경비 모습은 미국 주요TV에 의해 수시로 보도돼 사태의 심각성을 미 전역에 전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 국내에서 이를 지켜본 많은 시청자들도 『서부활극이 따로 없구나』라면서 교포들과 아픔을 같이했다. 『「가주마케ㅌ」은 한 개인의 것이기에 앞서 한인커뮤니티의 자존심이라고 믿고 사수했습니다.』
「가주마케ㅌ」의 경비책임을 맡았던 석종수씨(59)는 『「가주마케ㅌ」이 무너질 경우 웨스턴 북쪽 방향의 한인업소들이 더욱 위험해질 것이라고 판단,이곳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경비에 임했다』고 밝혔다.
「가주마케ㅌ」에서 자체 경비가 시작된 것은 폭동발발 이튿날인 30일 새벽부터. 슈퍼마킷 자체의 무장경비원 6명,한인청년당원 10여명,한인타운방범팀 10여명 등 30여명이 옥상과 지상으로 나뉘어 24시간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이들은 마킷주변에 쇼핑용 카트와 트럭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쌓고 20여정의 총으로 무장한채 화염병이나 총으로 무장한 폭도들이 지날때마다 수십발의 공포를 쏴 이들을 쫓았다.
『한인타운이 폭도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력을 믿기보다는 먼저 우리 스스로가 타운을 지키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두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이번과 같은 무법 천지에서는 믿을 것이라곤 우리자신밖에 더 있겠습니까.』
「가주마케ㅌ」외에도 폭도들이 얼씬도 못했던 상가가 한군데 더 있다. 「옥스포드플라자」가 바로 그곳. 이 상가 역시 약 40여명의 한인들이 샷건과 권총으로 몰려드는 폭도들을 물리쳤다.
이 상가에도 폭동 이튿날 50여명의 폭도들이 몰려들었다가 무장경비원인 필립 김씨(40)가 공포를 발사하자 혼비백산해 흩어졌다. 1층과 2층의 무장한 한인들도 폭도들이 얼씬거리기만 하면 공포를 쏘아대 이 상가에서는 폭도들에게 피해를 본 업소가 한군데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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