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소재 미 공개 유고 "햇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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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단재 신채호의 미 공개 견고들이 대거 활자화된다. 문학사상사는 전기·소실·문학적 논설 등 문학과 연관된 단재의 유고들을 단행본으로 묶어 펴내기로 하고 우선 최근 출간된『문학사상』5월 호에「아방윤리경」전문을 공개했다. 단행본으로 공개될 유고는 수필「조선의 지사」「단아잡감록」 , 기행문「태산행기」, 소설「건륭황제의 꿈」등과 논설 등 총 30여 편이다. 이 같은 단재의 미 공개 유고공개는 중국 연변대 김병민 교수(41)에 의해 이루어졌다.
82∼86년 김일성대학 박사과정에 유학했던 김씨가 단재의 문학을 전공하며 북한의 국립도서관 격인 인민 대학습당에 보존돼 있는 단재의 유고들을 정리해 나와 연구 끝에 공개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단재의 유고 공개는 비록 제3국인 중국동포학자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지만 남북자료교류를 통한 남북문학연구교류의 필요성을 일깨운 것으로도 의미를 지닌다.
단재는 사학자·언론인·혁명가·무정부주의자 등으로 불리며 문필활동과 실전적 투쟁으로 일제 식민시대에 맞서다 일제에 체포돼 1936년 만주 여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단재의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꿰뚫고 있는 정신은 민족주의였다. 일제하 주체성을 강조한 민족주의의 큰 광맥이었음에도 불구, 해방 후 단재는 무정부주의로 몰려 남북한 모두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옮져진 헤아릴 수 없는 단재의 유고에도 불구, 그 일부만이 추려져 1966년 북한에서『용과 용의 대 격전』이란 제목의 책이 출간됐을 뿐이다. 남한에서는 1977년『개정판 단재 신채호 전집』전4권이 출간됐고 1990년 단재의 소설과 전기 9편을 현대어에 맞게 쓴『꿈 하늘』이 출간됐다.
이번『문학사상』5월 호에 공개 된 「아방윤리경」은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실린 인물 전기·설화들을 문학적으로 윤색한 일종의 사화. 단군이래 조선의 고유한 윤리로 내려오다 신라에와 세속오계로 굳은 다섯 가지 계, 곧 국계·가계·지계·전계·살계를 항목별로 나누어 그것에 얽힌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우리의 전통사상은 물론 문화의 뿌리를 찾고 민족의 긍지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 국계항목 중『부여에서는 수재·한재·충재 등의 자연재해까지 왕에게 책임 지워 왕의 존폐와 처형을 논의했고, 고구려는 연부와 계부가 상호교체하며 왕위에 올랐으며, 신라에서는 박·석·김 삼성의 공화취대제가 실시되었으니 이로 보건대 그 당시 인민들은 임금으로 하여 나라가 있음이 아니라 나라로 하여 임금이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알았나니 이들에게 어찌 나라를 떼어놓고 임금에 대하여 충성을 다한다는 윤리가 성립될 수 있으리오. 이는 후세의 역사가 나라를 임금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거나/…/여하간 임금도 또한 국민의 한사람인고로…』에서 볼 수 있듯 단재의 민족주의사관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김 교수가 필사해온 단재의 유고를 검토한 권령민 교수(서울대)는 비 공개된 것도 많지만 이미 국내에 공개된 것 중에도 원본과 틀린 부분이나 빠진 부분도 많이 발견되었다』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미 공개 유고를 덧붙인「완결 본」을 펴냄으로써 단재 연구의 전기를 마련해줄 것 같다』고 평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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