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쑥!] "영문법은 여전히, 아니 더 중요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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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민사고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전수인 교사. 그는 '무턱대고 회화 학원에 다니기 전에 나에게 영어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필요할 것인가를 따져 보라'고 강조한다. [사진=강정현 기자]

'성문종합영어''맨투맨'…. 한때 중.고교 학생들에게 교과서만큼이나 익숙했던 영문법 책의 제목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당수 중.고생에게는 생소한 이름이 돼 버렸다. 10년 사이 영어 교육의 중심은 빠른 속도로 '문법(쓰기)과 읽기'에서 '듣기와 말하기' 로 이동해 왔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시작된 바람이 학교에도 불어 각 학교에 원어민 교사 배치가 늘고 있다.

표현과 이해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일단은 귀가 트이고 입이 터져야 한다는 것이 요즘 영어 교육의 방향이다. 이런 세상에 한 고등학교 교사가 1년여 동안 공을 들여 '문법책' 한 권을 냈다. 매년 수십 명의 해외 유명 대학에 학생들을 유학 보내는 민족사관고 영어과를 총괄하고 있는 전수인 교사가 펴낸 '실전 영문법의 완성'이 바로 그 책이다. 전 교사는 "문법은 여전히, 아니 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왜 다시 '문법'인가="민족사관고 유학반 아이들은 1년 동안 최소한 40여 권의 문학작품을 영어로 읽고 영어로 과제를 쓰고 발표하는 데도 대학 지원 원서를 쓰거나 SAT 쓰기 문제를 풀어 놓은 걸 보면 어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있어요." 그가 '문법책'을 쓰게 된 동기다. '실수가 잦은 문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주어와 동사의 불일치, 부적절한 수동태 사용, 시제 혼동 등이다.

민족사관고 학생을 포함해 상위권 중.고생들에게 이런 허점이 생긴 원인을 그는 "지나치게 회화를 강조하고 수능형 영어 교육에만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봤다. 수능 영어시험은 학생들에게 글의 앞뒤와 핵심 단어를 재빨리 살펴 주제를 파악하는 '눈치'를 갈고 닦도록 했지만 수준 높은 문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과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힘을 기를 시간을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또 지나치게 회화를 강조하다 보니 구어체에서 허용되는 문법에 어긋나는 표현을 그대로 글로 옮기는 습관이 생겼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는 "해외로 유학 가는 학생들을 제외하면 한국인들은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경우가 영어로 말을 해야 하는 경우보다 많을 것"이라며 "영어 쓰기 능력은 현실적 필요성에 비해 교육 과정에서 지나치게 간과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법 언제.어떻게 해야 좋은가="알파벳을 배운 직후에 영문법 책을 들었던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문법 체계를 잡아야 영어 습득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외국인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입을 떼는 듯한 사람도 문법에 체계가 없다면 전문적인 대화를 주고받거나 격식을 갖춘 서신을 교환하는 단계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에 자주 노출되는 최근의 교육 환경을 감안하면 중학교 1~2년 때쯤은 문법적 체계를 잡아주는 것이 좋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문법의 핵심을 설명한 개설서와 문법 문제와 영작 과제가 적절히 혼용된 워크북을 동시해 활용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문법의 구조와 체계를 우리말로 깊이 설명하려고 지나치게 애쓴 책보다는 예문 중심으로 구성된 개설서가 실용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영어로 글 잘 쓰는 법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영어 교재만 열심히 공부한다고 영어로 좋은 글을 쓸 수는 없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영어' 이전에 '글쓰기' 라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많은 글을 읽고 토론해 본 학생들이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있죠."

글=임장혁 기자 <jhim@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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