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문화통신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조선시대 우리의 선진문화를 일본에 전했던 「조선통신사」가 현대적으로 재현될 모양이다. 문화부는 오는 6월말 학술·예술·종교 등 각계인사 1백30명으로 구성된 「92 한국문화통신사」를 일본에 파견,전시·공연·포럼 등을 통해 우리문화를 일본에 알린다고 한다. 또 일본측에서도 내년에 문화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할 계획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는 임난직후 한일 두나라가 국교를 회복한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약 2백년동안 전후 12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한 외교·문화사절단이다. 당시 일본측도 한국에 사절단을 보내왔지만 전쟁직후라 민심이 흉흉해 조정은 그들의 상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사절단은 대부분 부산포에 머무르다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이 조선통신사에 대한 해석에 있어 한일 두나라 학자들 사이에는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다. 한국측은 당시 일본보다 크게 앞섰던 우수한 문화·예술을 일본에 전파했다는 점에서 긍지를 갖는다. 그때 기록들을 보면 일본측은 조선의 통신사 일행을 거국적으로 맞았음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이 묵는 객관에는 일본의 지식인·문화인들이 줄을 이어 찾아와 혹은 향응을 베풀고 필담을 원하는가 하면,혹은 시문과 휘호의 교환을 원하기도 했다.
그들은 7년에 걸친 전쟁을 통해 조선의 선진문화를 직접 보고갔다. 따라서 섬나라에 틀어박혀 바깥세상을 잘 몰랐던 일본 지식인·문화인들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컸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측은 당시 국서의 명의가 조선은 국왕인데 비해 일본측은 「대군」의 칭호를 쓴 덕천막부의 장군이었다는 점,선물의 내용 등을 들어 일종의 「조공」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해석이야 어떻든 당시 일본의 「칼문화」가 조선의 「붓문화」에 대해 선망과 존경심을 갖고 접근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두나라의 새 문화통신사는 이런 점을 감안,과거보다는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손기상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