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가족경영」탈피해야”/노 대통령,5대그룹회장 간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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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경분리는 헌법 제1조와 같은 것 이 회장/중소기업에 특별 자금 지원해달라 최 회장
노태우 대통령은 25일 전경련의 유창순 회장·최창락 부회장과 이건희 삼성·정세영 현대·구자경 럭키금성·김우중 대우·최종현 선경회장등 5대 재벌그룹회장과 오찬겸 간담회를 가졌다. 다음은 김학준 청와대대변인이 전한 이날 모임의 대화요지.
▲노대통령=(안정기조 유지,임금인상 억제 등을 강조한뒤)지난 총선을 계기로 현대그룹이 인력과 자금을 동원,정치활동을 함에 따라 파문이 일고 마치 정부와 현대가 대결하는 듯 비춰진 점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산업경쟁력 회복을 위해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기업이 그 인력과 자금으로 특정정당을 지원하는 것은 국민에게 불안을 안겨줄 것입니다. 나 스스로가 정치와 경제의 연결고리를 차단하고 대통령선거가 평온하게 치러지도록 노력할 작정입니다. 기업인들은 경쟁력 향상 등에 전념해주기 바랍니다.
대기업에 대한 비판여론은 문어발식 기업확장,소유와 경영의 미분리,금융자금 편중뿐 아니라 재벌기업의 특정정당 지원으로 다시 제기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유창순 회장=대기업의 정치참여 때문에 정경분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등 파문이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염려를 사게된 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정세영 회장=예기치 않게 저희 명예회장(정주영)께서 정치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사회·경제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또 정부의 입장을 불편하게 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정경분리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건희 회장=기업이란 국가와 국민을 떠나 생각할 수 없습니다. 국가·국민이 안정되어야 기업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점에서 정경분리의 원칙이란 너무나 당연해 말하자면 헌법 제1조와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공동발전을 위해서는 진정한 정경분리가 이룩되어야 합니다.
▲구자경 회장=정경분리는 당연하며 국민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이 어려운 점을 감안,선별해서 지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김우중 회장=최근 우리경제에 여러가지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해죄송스럽니다.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여 기업들이 미리 준비를 못한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력은 제조업입니다. 제조업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건의합니다.
▲최종현 회장=정경분리가 이루어지도록 재계가 정부와 협의해 좋은 결과를 끌어내 봅시다.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큽니다. 자금유통에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특별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이 어떨지요.
▲노대통령=대기업들이 우리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크지만 무분별한 기업확장,소유·경영의 미분리,금융자금지원의 편중화현상등 부정적인 측면이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재벌기업의 특정정당 지원으로 재벌에 대한 비판여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치마저 재벌에 예속되는 사태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재벌기업은 이제 전문주력업종을 선택하여 그분야에서 세계 초일류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특히 사치성 서비스산업 등에 진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또 가족경영체제를 고수하면서 회사돈을 개인돈으로 유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찬장을 나서던 정세영 회장은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고 인사를 했고 노대통령은 『기업활동을 열심히 하십시오. 기업활동을 힘껏 돕겠습니다』고 대답했다.<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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