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이용 진료비 납부 시기상조|박두혁 <연세의료원 홍보 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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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부나 의료기관에서 진료비 계산을 할 때 신용카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병원 측에 권장한데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첫째는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병원의 진료비 계산 창구가 더욱 복잡해지고 환자와 병원 당국간에 시시비비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신용카드로 진료비 계산을 하려하는 경우 이 카드가 불량 거래 카드가 아닌지 확인하고 카드 회사로부터 사용승인 번호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매월 말 또는 카드 소지자의 카드 사용 대금 결제 일에 맞추어 카드 회사에 대금을 청구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어서 병원에서는 별도의 인력이 필요한 경우가 일어날 것이 우려된다.
둘째로는 진료비를 신용카드로 납입하였을 경우 사용 액의 3∼4%를 수수료로 카드 회사에 내야한다는 사실이다. 연간 진료비 중 의료보험에서 부담하는 진료비를 제외한 환자 본인들의 부담금을 2백억원이라고 친다면 6억∼8억원의 막대한 수수료를 카드 회사에 내야한다.
금년에 의료보험수가가 5.98%인상되었는데 이는 약값이나 재료비는 제외한 의사들의 수기료를 중심으로 인상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 병원 수입에 미치는 영향은 3.8%정도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마당에 3∼4%의 수수료를 신용카드 회사에 내게 된다면 가뜩이나 악화된 병원의 경영상 문제가 일어나게 되고, 결국 병원들은 비록 권장 사항이라고는 하지만 신용카드 사용을 통한 진료비 수납을 기피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자칫하면 이 제도는 환자들과 병원간의 마찰을 초래할 우려를 낳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병원의 진료비 수납에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환자와 병원간의 불신을 초래하는 또 하나의 원인 제공이 된다는 점에서 정책 결정에 신중을 기하여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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