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현실과 논의배경(신산업정책: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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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국제경제 환경변화에 적극 대응/경제력 집중완화·업종전문화 추진
급변하는 경제여건에 대비하는 새로운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연초 최각규 부총리의 발언을 계기로 정부의 소위 신산업정책 추진여부를 둘러싼 파란이 일고있다. 대기업그룹에 대한 새로운 규제 및 파급영향을 우려한 재계는 급기야 이의 보류를 공식 요구하고 나서는등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신산업정책」이 논란을 빚게된 배경과 최근 해외의 산업정책 동향을 두차례로 나눠 알아본다.<편집자주>
「미·영식 경제발전모델이 한국에는 해롭다」­.
최근 경제부처의 관료들과 산업조직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들이 돌려가며 읽는 미국 뉴 스쿨대 앨리스 암스덴 교수의 논문제목이다.
암스덴 교수는 작년 12월 하와이 동서센터에서 발표한 이 글에서 『한국이 70∼80년대와 같이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자유시장원리에 입각한 미·영식 모델을 포기하고 정부개입이 상대적으로 더 허용되고 기업과 정부간의 유기적 관계가 중요시되는 일본·독일식 경제발전모델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암스덴의 글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수 있지만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관료·학자들의 시각을 나타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최근 『기업을 규제하는 신산업정책을 새롭게 수립하는게 없다』는 정부당국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재벌에 대한 정부의 새로운 규제가능성을 재계가 우려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분위기가 일부 관·학계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별한 신산업정책이 정부쪽에서 마련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신산업정책은 연초 최각규 부총리가 능률협회 주최 간담회등에서 『급변하는 국제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정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을 일부에서 신산업정책이라는 용어까지 붙여가며 부각시키면서 증폭돼 왔다.
더욱이 경제기획원은 최부총리의 지시에 따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산업연구원(KIET)에 ▲부실채권 정리 및 법정·은행관리제도 개선 ▲상호지급보증제도 개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계열화방안 ▲정부역할의 재정립 ▲2000년대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등 경제정책 전반을 망라한 8개과제의 검토를 맡겼다. 이것이 항간에 『재벌을 해체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으로까지 확산되는 진원지가 된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와 관련,『제7차 5개년계획 산업정책 부문에서 제시한 경제력 집중완화,제조업의 경쟁력 강화 등의 정책을 좀더 구체화하기 위해 KDI에 연구를 맡겼을 뿐이며 그 내용을 뜯어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같은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신산업정책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않고 있는 것은 6공이후 업종전문화,소유와 경영의 분리,경제력집중완화를 위한 정책이 추진돼 왔고 최근 정주영씨의 국민당 창당을 계기로 재벌에 대한 정부의 시각이 나빠져 재벌해체를 포함한 강경한 정책이 나올지 모른다는 우려가 재계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벌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포함하는 신산업정책은 없어도 일부 관계와 학계의 분위기가 경제력 집중등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의 산업정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80년대 중반이후 정부 스스로 경제의 자유화·개방화를 강조해왔으나 최근 무역적자가 커지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정부역할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이와 관련,최근 정부 방침은 기존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시책을 강화,대기업군의 상호지급보증 축소,소유와 경영의 분리 등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 강제적인 수단을 통한 재벌의 해체는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구상되지 않고 있으며 생각이 있다고 해도 현실적인 방법이 없다는게 정부관료들의 솔직한 답변이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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