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 열풍-"목청 높여 스트레스 풀어요"|본사 기자 주택가 현장 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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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1일 오후 4시 서울 돈암동 S여대 부근 주택가에 위치한 K노래방.
단발머리에 감색 교복 차림의 여고생 5명이 막 들어와 자리를 잡은데 이어 또 다른 여고생 6명이 한 무더기로 들어온다.
종업원의 안내로 2평 남짓한 「룸」에 들어간 이들은 TV모니터 앞에 앉아 노래 책에서 곡을 선택, 5백원짜리 동전을 넣고 번호를 누른 뒤 반주에 맞춰 고함을 질러댔다.
그중 안경을 쓴 한 여학생은 다리를 꼬고 앉아 연신 줄담배를 피워가며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고 있었다.
노래가 시작되면 형광등이 꺼지고 형형색색의 조명등이 천천히 혹은 빨리 돌아가는데 마이크 잡은 학생의 모습은 마치 가수가 된 듯한 표정. 『최고득점 87점, 득점 85점, 가수의 소질이 있습니다.』
TV 화면에 나타난 노래 촌평에 학생들은 폭소를 터뜨리고 노래를 마친 학생은 연신 V자를 그어댄다.
방음이 제대로 안 돼 옆방 노래 소리가 새어나오고 환기도 엉망인 탓에 금세 목이 매캐해져도 학생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했다.
노래연습장이 최근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성인·대학생은 물론 중·고생까지 「열풍」에 휩싸여 있다.
S여대 일대 유흥가를 관할하는 서울 성북 경찰서 동선 파출소 한 직원은 『건물 3, 4층에 사는 주민들의 경우 아래층 노래 소리에 아이들이 공부를 못한다는 항의 전화가 하루 3∼4통씩 걸려온다』고 했다.
같은 시간 각종 입시 학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노량진역 앞 지하 1층에 자리한 J노래연습장.
수업을 마치고 이곳을 찾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있다.
일부 여학생들이 머리에 빗질을 하고 화장을 하는가 하면 남학생들은 바로 옆에 붙은 오락실에서 종업원들의 호명을 기다리며 전자오락을 즐긴다.
『6명이 놀러와도 1만원이면 됩니다. 학생 입장에서 작은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자주 찾는 편입니다.』
서울 S고 1년인 박모군 (17)은 『반 학생 중 70∼80%가 다녀온 경험이 있다』며 『저녁 때 독서실 갔다가도 머리가 아프면 가끔씩 오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정형모·김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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