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해운선 특히 “공공연한 비밀”/현대상선 사건으로 본 비자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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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운항비용등 실제보다 부풀려 해운/하도급액수·자재비 장부 조작 건설
검찰은 21일 비자금조성을 위한 탈세혐의로 정몽헌 현대상선 부회장을 구속키로 함으로써 비자금에 대한 관심이 새삼 커지고 있다.
비자금이란 말 그대로 비밀스런 목적에 쓰여지는 돈이다. 기업활동을 위한 로비성 자금으로 정당등에 대한 지정기부금 손비인정제도와 접대비·기밀비 등 세법상 인정되는 돈도 있지만 필요한 곳에 「기름」을 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라고 기업들은 얘기한다. 예컨대 자본금 1백억원,연간매출 1천억원 규모의 회사라면 영수증없이 쓸 수 있는 기밀비 한도는 3억원 남짓되는데 이것만 갖고는 턱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자금을 별도로 조성,은밀한 목적에 활용하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든 업계가 하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용도를 밝힐 수 없는 성질의 돈인 만큼 조성방법도 정상적일 수 없다. 대체로 장부조작에 의해 자금을 마련하며 이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탈세가 이뤄진다.
장부조작은 수많은 방법이 있다. 물건을 팔고 안판 것으로 하기도 하고 하청업체나 부품공급업체의 하도급가격·매입가격을 실제보다 높이고 차액을 빼돌리기도 하며 수출업체의 경우 수출용원자재의 일정비율을 손실로 인정해 주는 것을 이용해 이를 팔고서도 손실로 처리하기도 한다.
비자금은 어느 기업에나 있지만 특히 심한 곳이 건설·해운업계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현대상선을 비롯해 87년의 범양사건,91년의 수서사건 등 비자금이 표면화돼 사회문제가 된 사례가 모두 해운·건설업에서 일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업종의 성격상 구조적으로 비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 업종 종사자의 한결같은 얘기다. 최근 일련의 현대그룹관련 조치가 이루어지면서 현대상선이 얽혀들어간 것도 정부가 이같은 해운업계의 특성을 활용(?)한 것이란 얘기도 있다.
현대상선 말고도 외국화주나 대형선박회사들을 상대하는 일이 비교적 빈번한 외항선박회사들이 다른 업종보다 손쉽게 비자금을 조성해 온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가장 일반적인 비자금조성방법은 운항비용을 실제보다 부풀려 차액을 빼돌리는 것이다. 해운업의 주수입원은 운항수입이고 비용은 항비·화물비·연료비 등 추적이 어려운 외국에서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이를 과다계상하는 방법이 가장 손쉬운 것이다.
건설업도 업종의 특성상 비자금에 관한한 다른 어느업종 못지않게 눈총을 많이 받아온 업종.
우선 투입비용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노무비의 경우 공정단축여하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밖에 없고 자재비등도 최종제품의 질을 소비자가 일반상품과는 달리 일일이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조작의 소지가 많다.
또 하도급계약시 장부상 계약내용과 실제 지급액수와의 차이 등 2중계약사례는 여전히 해소되지않고 있고 면허가 제한된 상태이기 때문에 무면허업체들이 총공사비의 2∼3%에 해당하는 면허대여료를 주고 대리공사를 벌이는 경우도 당국의 계속된 단속에도 불구,여전히 남아있다.<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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