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측의 합의 이행 여부 지켜본 후 지원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어제 10개 항의 합의문을 채택했다. 쌀 40만t의 제공과 남북 열차 시험운행의 5월 17일 실시가 그 골자다. 그러나 합의 방식에 모호한 대목이 있어 이것이 제대로 이행될지 의구심이 든다.

정부는 쌀 지원을 6자회담의 '2.13 합의'와 연계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측의 2.13 합의 이행 여부에 따라 쌀 제공 시기와 속도가 조정될 수 있다'는 점을 구두로 북측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차관합의서에 첫 배의 출항 시기를 5월 말로 명시한 것도 이런 차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서로 합의된 것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은 북한이 과연 '구두 조건'에 얽매일지는 두고 볼 노릇이다.

열차 시험운행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성사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군사적 보장장치'에 대해, 합의문은 '적극 협력한다'고만 돼 있다. 북한은 지난해 시험운행 예정 일시 하루 전에 느닷없이 '불가' 통보를 해온 적이 있다. 게다가 '군사적 보장장치'의 채택은 매우 복잡미묘한 사안이다. 북한 군부가 이를 '해상경계선 재설정'과 연계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손쉽게 합의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20여 일 만에 합의할 수 있다는 것인지 매우 의아하다.

'2.13 합의' 후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서두르는 기색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레짐작으로 중유 구입 결정을 조급하게 내려 36억원의 혈세를 날린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합의도 효용 여부는 차치하고 어떻게 해서라도 대화 채널만은 유지하려는 남측의 조급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북 지원을 '1대1'식 상호주의에 따를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조건 먼저 주고 북의 호응을 기대하는' 것도 큰 문제다.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남남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보고 지원하는 협상 방식이 필요하다. 쌀 지원은 북한의 '2.13 합의' 이행을 지켜본 뒤 해도 늦지 않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