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재/정치·경제파장고려 “늦추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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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주력업체취소땐 그룹전체 큰 타격/청와대 “행위자엄벌 기업제재는 신중”
현대전자의 주력업체 취소,정몽헌 현대상선 부회장의 구속등 금융·사법상의 「현대제재」가 언제 어떻게 결말이 날지 초읽기에 들어가있다.
그러나 관계 규정도 따져보아야 하며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나 여론도 고려해야 하는 정치·경제적 배려때문에 현대제재는 선뜻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외환은행은 현대가 소명자료를 낸 지난 4일부터 대출금유용여부를 조사해 왔으나 제재여부를 결정해야 할 17일 오전 홍재형 은행장과 관계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숙의한 끝에 실사가 덜 끝났다는 이유로 일단 시한을 재연장한다는 정도의 결론아닌 결론을 내는데 그쳤다.
「대출금유용사실은 명백하다」며 이번 문제를 표면화시켰던 은행 감독원은 실사결과를 기다리며 『도대체 여론이 어떻게 돌아 가느냐』에 관심을 쏟고 있다. 현대만 몰아붙인다는 지적을 가장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마당에 주력업체취소라는 중벌을 내리기엔 대출금유용내용이 악의적이지는 않다는 점 때문이다.
○…현대전자가 주력업체를 취소당할 경우 이 회사는 물론 그룹전체의 타격도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주력업체를 제외한 30대 그룹계열사의 은행대출금은 각은행 전체대출금의 얼마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여신한도관리에서 제외되던 현대전자가 주력업체자격을 박탈당하면 현대전자는 앞으로 은행돈 빌려쓰기가 거의 막히게 된다.
그동안 주력업체로서 대출을 많이 얻어 쓴데다 기존대출금이 새로 여신한도관리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주력업체가 취소되면 또 공장증설등 각종 투자활동에도 유상증자나 부동산매각등 자구의무가 크게 강화된다.
○…현대에 관한 한 청와대 경제팀의 의견은 행위자의 범법행위는 엄격히 처벌하되 기업에 대한 제재는 신중을 기해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쪽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 경제부처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대전자의 위규사항이 밝혀지면 주력업체취소는 불가피하다』는 「원칙」을 다시 확인한 바 있는데,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현대전자의 주력업체 지정이 취소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단서조항」이나 「유예조항」을 붙여 충격을 희석시키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으나 현재의 여신관리규정을 고치지 않는한 그같은 유예성의 단서 조항을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상선 탈세사건에 관련된 정몽헌 현대상선 부회장의 구속여부와 현대전자에 대한 주력업체 취소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현대그룹은 두 문제가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던 17일을 「운명의 날」로 보고 긴장했다가 결정시기가 둘다 다음주초로 연기되자 일단 안도의 한숨.
현대그룹측은 실무적인 문제때문이라고 하지만 두건의 결정이 거듭 연기되며 정부가 고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현대사태가 극단적인 쪽으로 치달으면 우리 경제만 파탄날 뿐」이라는 여론의 영향탓 아니겠느냐고 해석하며 혹시나 선처가 내려질 신호가 아닌가 기대.
현대상선 전사장인 박세용씨와 송윤재씨의 탈세혐의구속만으로도 대외신용도 등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아 침울한 분위기인 현대그룹은 정주영씨의 5남이자 그룹운영에서 비중이 큰 정몽헌 부회장의 구속사태는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걱정하는 분위기.
그룹의 한 간부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기업이 정부와 싸울 수 있겠느냐』며 『경제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여론이 조속한 사태해결을 유도해주어야 한다』고 호소.
○…현대처리에 대한 「고위층」의중을 파악하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과천관가는 여러 경로로 『현대에 대한 대처가 미온적이지 않느냐』라는 「의중」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현대 제재의 「수위」를 재는 어려운 방정식 풀이에 골몰.
한편 지난 15일 최각규 부총리,이용만 재무,한봉수 상공장관 등이 갑자기 예정에 없던 청와대 오찬을 다녀와 모두들 주목.
이날 오찬에서는 주로 임금문제가 거론됐으나 현대전자에 대한 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다는 노대통령의 지적도 있었다는 후문.<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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