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투신 「특융」 어떻게 봐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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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골병이 든 투신의 부실을 처리해 통화·금리·자금흐름 등의 경제현안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가자는 정부의 안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는 「한은자금지원」의 실질적인 경로는 어떤 것이며,일반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본다.
◎「재정」이든 「금융」이든 국민부담 불가피
▷실상◁
과거에도 그랬지만 국민경제의 부실을 정리할 때마다 나오는 논란은 결국 「명분론」과 「실리론」의 차이다. 명분론은 누가 책임을 지느냐 하는 것이고 실리론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다.
투신의 부실을 정리해야겠다고 나선 이번 정부의 안에 대해서도 똑같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자본시장의 부실을 키운 것이 정부인데 왜 한은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느냐는 논란인 것이다. 그러나 국민경제의 입장에서 보면 그같은 논란은 결국 부실정리를 위한 돈을 「재정」이 대느냐 「금융」이 마련하느냐의 차이고,더 자세히 말한다면 「세금」을 거둬 대느냐 「돈을 찍어서」 마련하느냐의 차이다.
5공때의 해외건설이든 6공때의 투신이든 이미 생긴 부실기업을 정리하겠다면 어디선가 그 뒷돈은 대야하는데,국민경제밖에서의 어디선가 「공돈」이 떨어지지 않은 바에야 결국 재정 아니면 금융이 그 뒷감당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기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다. 특정분야의 부실을 국민의 세금인 정부재정으로 해결한다는 것고 문제도,결국엔 크건 작건 인플레를 통해 국민 모두가 물가상승의 부담을 나누어 지게되는 한은특융으로 해결한다는 것도 문제다.
세금보다 인플레가 더 소득 역진적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재정이 해결하는 것이 더 옳다고 할 수 있으나,문제는 올해 재정이 별로 여유가 없고 또 한은 특융과 같은 과정을 밟을 수 있는 규정이 재정에는 없다는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국민의 입장에서는 세금이냐 인플레냐 하는 부담의 차이일 뿐이라는 이야기인데,만일 정부든 한은이든 이같은 차이를 고려하기 보다 당장 서로 책임을 안지기 위해 논란을 벌이는 것이라면 국민경제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더 손해라는 것을 염두에 둬야할 것이다.<김수길기자>◎통안증권 발행 통화량 증가 최대한 억제
▷선례◁
한은특융이라하면 과거 부실 해외건설업체를 정리하면서 그로 인해 수지가 악화된 시중은행에 지원된 돈이 떠오른다. 85∼87년중 세차례에 걸쳐 지원된 연리 3%의 저리자금은 1조7천억원에 달하긴 했지만 사실 이 돈중 통화증가로 이어진 것은 많지 않다.
당시 특융이 나간 과정은 한은이 돈을 새로 찍어 대준 것은 거의 없고 시은들이 한은에서 이미 빌려쓰고 있던 유동성조절자금(연 6∼8%)을 금리가 3%인 특융자금으로 바꾸어 준 것이다. 이때 통화량 증가는 1조7천억원이 아니라 한은이 더 받을 이자를 덜받는 부분이 된다. 다시 말해 유동성 조절자금과 특융의 이자차이만큼 통화가 늘어나는 것이다. 1조7천억원의 약4%인 6백80억원이 통화증발로 연결됐다는 얘기다. 빚더미의 투신사 회생을 위해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이번 한은자금도 이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정부는 통화증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특융으로 나가는 돈만큼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해 그만큼의 돈은 한은으로 하여금 다시 환수케한다는 생각이다. 이 경우 역시 통화량은 한은이 지원하는 자금전액이 아니라 특융이자와 통화채이자와의 차이만큼만 늘어나는 것이다. 만일 이번 특융 이자를 연3%로 가정한다면 통화채이자(현재 연13%)와의 차이만큼 돈이 시중에 더 공급된다. 예컨대 특융규모를 1조원으로 잡을 경우 1조원의 10%인 1천억원이 연간 풀린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왜 한은이 투신사에 특융을 지원하고 이를 다시 통안증권으로 환수하는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할까. 이는 투신사가 기존에 한은에서 빌려쓰고 있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이 특융대상기관이 한은 차입금을 안고 있었다면 특융지원금 만큼 기존 차입금의 이자를 낮추면 그만이었으나 이번엔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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