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사 "삼중고" 극심한 자금 압박. 잇따른 흥행 실패, 외화 수입가 폭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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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명문영화사 「황기성 사단」이 에로영화 『빠담풍』을 만들고 있다. 해외시장까지 겨냥, 확실한 재미를 갖춘 에로물을 만들 작정이다.
그러나 명문영화사와 에로물은 쉽게 연결이 안 된다는 게 영화계의 반응이다.
지난해 「황기성 사단」은 『서울 에비타』『열 일곱 살의 쿠데타』『테레사의 연인』을 개봉, 모두 쓴맛을 보고 말았다.
그러므로 「황기성 사단」의 『빠담풍』제작은 지난해 입은 타격을 어떻게 하든 만회해보려는 자구의 몸부림인 셈이다.
「황기성 사단」이 이렇듯 지금 영화사들은 극심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한국영화를 만들 엄두를 못 낸다. 돈 마련이 쉽지 않을 뿐더러 돈 문제가 해결돼도 흥행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마음먹고 만든 한국영화가 흥행 실패하면 재 투자비를 건지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사의 기반마저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때때로 제작 자본의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미국영화를 수입, 상영해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물론 수입자유화 이후 미국영화가 이익을 보장해주는 것은 옛날 일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영화사는 미국 영화에 희망을 걸게 돼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마저 미국 영화 직배가 완전히 뿌리를 내리면서 사라지고 있다. 웬만한 것은 모두 직배용이고 나머지에서 고르려니 마땅한 것이 없는 것이다.
또 과거에는 지방배급입자들이 미리 돈을 주고 상영권을 사갔으나 요새는 영화가 완성된 뒤에 사는 경우가 많아 이 또한 제작비 조달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영화사들은 미국영화 수입 문이 막혀가기 때문에 눈을 유럽영화로 돌리는 한편 흥행 성이 좋은 홍콩영화에 매달리는 형편이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미국영화에 비해 훨씬 싼값에 들여오던 유럽영화 수입가도 나날이 뛰고 있다.
최근 들여온 프랑스 영화『라망』은 끼워 판 한편까지 합쳐1백만 달러 가까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영화 수입가 폭등은 한국영화사의 수입 사정을 눈치챈 유럽영화사가 수출 가를 전보다 높이 부르는 것도 이유이나 한국업자끼리의 과당 경쟁이 더 큰 이유라 문제가 되고있다.
한 영화사가 어떤 영화의 값을 올려놓으면 다른 영화의 값도 뛰게 마련이다.
영화평론가 김종원 씨는 이를『미국영화에 뺨맞고 유럽에 가서 주머니를 털리는 짓』이라고 비유하며 『운명 공동체 의식을 갖고 각 영화사가 수입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과당경쟁은 홍콩영화를 둘러싸고는 추태에 가깝다.
1편을 30여만 달러에 수입한 『황비홍』의 속편은 무려 1백70만 달러까지 치솟아 영화업 협동조합이 오죽하면 수입거부 결의까지 할 정도로 홍콩영화계가 큰소리치게 만들어 놓았다.
1백70만 달러를 주고 들여와 설사 이익을 남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분명한 외화낭비며 그런 제작자는 그 이익으로 한국영화를 만들지도 않을 것이고 다른 영화사의 한국영화 제작의지를 꺾어놓는 악역만 할 것이다. < 이헌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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