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자금지원외엔 없는가/적자투성이 투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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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증시살리기”위해 지원책 불가피/또다른 특혜시비 휘말릴 소지도
「부실정리,이를 위한 중앙은행의 개입」­.
누구나 먼저 나서서 꺼내기 싫어하는 말이다.
부실이란 말도 그렇지만 한은특융이라 불리는 중앙은행의 장기저리자금지원도 그 어감부터가 좋지 않을뿐 아니라 실제로 평상시의 경제상황에선 들어서도 안되고 또 듣기도 힘든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공중반이었던 지난 85년 정부가 해외건설·해운산업의 부실정리를 결심했을때 이제 마지막으로 듣는가 했던 한은특융이란 소리를 6공말기인 지금 다시 들어야만 하게 됐다.
그만큼 3개 투신사의 부실이 더이상 내버려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표참조),이제 누군가는 나서서 듣기싫은 소리를 해가며 총대를 메야만 하게 됐다. 정부가 부총리·재무장관·한은총재의 뜻부터 신중히 모으기 시작한 것이 이 때문이다.
투신부실의 상황설명은 간단하다. 5공에서 6공으로 넘어오며 우리 실력이상으로 부풀려졌던 경제의 「거품」이 89년을 고비로 꺼지는데도 정치적 상황이 겹쳐 경제의 구조조정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로 주가가 내려앉은 것을 그때 그때 감당하지 못하고 정부는 89년의 12·12조치 이후 주가하락을 투신사가 계속 떠안게 함으로써 몇년간 쌓인 적자는 이제 투신의 순기능을 거의 마비시키기에 이르렀다. 자본금(3개 투신합계 2천6백억원)을 다 까먹은 것은 물론이고 한해에 6천억원이 넘는 이자를 무느라 정상적인 영업이익을 내도 이제는 이자 때문에 적자가 나 다시 빚을 얻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이처럼 부실한 몸으로 맥빠진 증시를 지키는 기관투자가의 역할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제야 뒤늦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감속성장등 경제의 구조조정을 하려니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는 원론과 당장의 고금리가 문제라는 현실론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 투신부터 살려 증시를 풀지 않는 한 경제현안에 대한 해결책마련이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투신 부실의 해결책 마련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5공 부실정리때도 그랬지만 누구를 위한 특혜냐 하는 시비가 당연히 나오게 돼있다. 정부는 정치권이나 각 계층을 상대로 한은자금을 동원하는 부실정리의 불가피성을 납득시키는 어려운 일을 해야만 한다.
더구나 지금은 정권말기다. 야당에게는 좋은 정치공세거리가 되고 특정계층은 이를 기화로 또다른 지원을 요구하고 나설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투신부실 정리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이제 부총리·재무장관·한은총재의 뜻부터 신중히 모으기 시작했다면 이를 비난하고 나설 세력을 향해 『그렇다면 다른 대안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라도 부실을 떨고 넘어가는 것이 앞날의 국민경제를 위해 더 비용이 싸게 먹힌다는 것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한은자금 지원외에 다른 방안이 있으면 모르겠으되 3개월마다 변칙으로 연장하고 있는 1조6천억원의 국고자금을 언제까지 끌고 갈수는 없고 또 투신의 차입금 이자를 경감시켜줄 수 있는 금융기관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금융이 실물경제의 혈액이라면 금융의 기능은 실물경제의 찌꺼기를 미리 걸러내는 콩팥과 같다.
금융의 기능이 잘 살아움직일때는 실물의 찌꺼기가 그때 그때 걸러지지만 그렇지 못할때 실물경제의 찌꺼기는 오랜기간 쌓이게 되고 결국 한은특융이란 소리를 들어가며 대수술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6공말기에 다시 부실정리라는 현안과 맞부닥친 지금 우리 경제는 적기의 구조조정과 금융의 제자리 찾아주기라는 원론을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또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은 요즘의 주가가 더이상 「경제주가」가 아니며 「정치주가」라는 투자자들의 소리에 귀기울여야만 한다. 투신의 부실은 6공형 부실의 전형이며 경제의 수단만 가지고는 해결이 어렵다는 논리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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