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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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직업의 특수성에 따라서는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남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경우 여성은 남성에 비해 취업에 있어 다소간의 불이익을 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사회에서 남녀고용 평등법을 마련해 여성에게도 똑같은 조건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전부터의 일이다.
두뇌는 물론 육체적 조건에 있어서도 여성이 남성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은 스포츠에서도 서서히 입증돼가고 있다.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의 전유물이던 스포츠에 여성들이 끼어들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농구·배구등 구기는 물론 마라톤·태권도·역도등 육체적 소모가 심하고 격렬한 스포츠에까지 여성들이 참여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여성해방운동은 이미 낡은 구호가 돼버렸고,여성 상위시대라는 다소 짖궂은 표현도 슬금슬금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그만큼 「유니섹스의 시대」는 우리들의 생활속에 깊숙이 파고든 셈이다.
이화여대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공과대학이 설치될 예정이라든지,삼성그룹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전문직제」를 도입해 남성과 똑같은 대우의 비서 70명을 공채할 계획이라든지,미스 코리아 출신의 헌병장교가 등장할 것이라든지 하는 최근 일련의 뉴스들은 이 시대가 바야흐로 여성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여자대학교 출신의 공학박사가 남성 엔지니어들을 지휘하는 모습,여성전문경영인이 남성직원들을 호령하는 모습,여성 헌병장교가 남성 사병들을 교육시키는 모습들이 조만간 우리앞에 전개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번 14대 총선에서는 지역구에서 단 한사람의 여성 당선자도 내지 못해 여성계의 불만이 가득하다. 여성계의 주장인즉 정치쪽에서는 모든 것이 여성들에게 불리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인데,「여성시대」의 추세가 계속 진전된다면 여성정치인들이 남성 정치인들을 리드하는 시대도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 같다.
아무튼 「약한 자여,그대 이름은 여자」라는 햄릿의 독백이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우리네 속담은 이 시대에는 걸맞지 않다.<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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