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분노관리' 심각…한국도 예외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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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자신을 포함, 33명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 캠퍼스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심리적 분석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범인 조승희씨 개인의 우울증.치정.정신적 결함 문제에서부터 이민 1.5세대의 사회 부적응, 미국 내 총기소유 허용 등 복합적인 요인이 사고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무엇보다 가난을 피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정착한 미국에서 조씨가 억눌린 분노를 풀 곳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성적인 성격에 낯선 이민생활에서 오는 고립감, 우울증, 사회에 대한 반감, 그리고 부모가 정서적으로 돌봐주지 못한 상황이 결합되며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악화되기까지했다.

이와 관련 서강대 심리학과 나은영(45)교수는 "미국과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 분노관리'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시 소아청소년 광역정신보건센터의 '2005년도 역학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초.중.고교생 22.2%가 '사회적 움츠러듦(social withdrawal.사회적 철퇴)'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거주 만 6세에서 17세까지의 청소년 2186명과 그 부모 26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사회적 움츠러듦'이란 발달단계에서 사회와 인간관계를 부정하는 장애. 대학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에 따르면 2004년 191명이던 상담자 수가 2006년 320명으로 급증했고, 연세대 상담센터에도 2003년 1364건이었던 상담 건수가 2006년에는 3485건으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우리 청소년들의 분노를 관리하는 시스템은 미흡하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지금도 자살로 내부 공격성을 표출하는 학생이 많다"면서 "이런식으로 방치하다가는 자살에 그치지 않고 살인까지 벌이는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분노관리도 신체검사의 일종으로 취급하고 검사.관리해야 하지만 학교에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 교수는 "어릴때부터 작은 좌절을 스스로 극복하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민 1.5세대의 경우, 미국사회에서 빨리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청소년들이 스스로 좌절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을 부모가 미리 차단하는 게 대부분인데 그것은 큰 실수라고. 부모의 강요에 의해 자라온 청소년들은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하고 결과에 따른 책임을 져보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자기통제 능력을 잃게 된다. 그러면서 작은 좌절에 쉽게 분노하게 되고, 선천적으로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의 경우 평소에 풀 기회가 없어 자살이나 타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표출한다는 것.

분노를 연구한 주요 학술논문에서는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 중에서 본인과 타인에게 가장 부정적인 영항을 끼치는 감정이 분노라고 본다. 특히 분노와 분노를 일으킨 자극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분노가 생길 때 우리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충동은 보복. 보복을 통해 내가 입은 상처를 갚아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복은 원한을 낳게 되고 문제 해결과 인간관계에 좋지 않은 결과를 준다.

나 교수는 "어른들은 경험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알지만 아이들은 잘 모른다"면서 "스스로 좌절을 경험하고 분노를 다스리거나 적절하게 표출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라"고 충고했다. 대화를 통해 감정을 교환하되,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기회를 빼앗지는 말라는 얘기다.

이여영 기자

▶세계의 분노관리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분노관리 방법

Step 1: 분노를 정확히 파악하기

자신의 분노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사람들마다 분노를 경험하는 원인이나 정도, 빈도는 각기 다르다. 자신의 분노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노의 모습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노는 정상적이지만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신호. 너무 심한 분노는 고혈압이나 다른 신체적 문제를 가져온다. 분노는 정당하더라도 분노에 뒤따르는 행동은 정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매우 파괴적일 수도 있고 언어적으로 학대적일 수도 있으며 성적인 학대를 동반할 수도 있다. 분노는 언제나 이차적 감정이다. 그것은 좌절이나 극단적인 스트레스 , 무시당하는 것, 거절 당하는 것등에 뒤따라 오는 것이다.

Step 2: 생각을 중단하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자극하는 사건을 만나게 되면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고 그것은 오히려 분노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신의 반복적인 행동이 더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떤 주문이나, 행동을 통해 생각을 중단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유용한 단어나 주문을 개발해서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만', '스톱', '성모마리아', '나무 관세음보살'등 자신에게 의미있는 단어나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다.

Step 3: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기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의 특징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다시 말해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Step 4: 용서하기

분노를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인생에서 힘든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용서할 수 없는 일을 한 사람이나 그들이 적절하게 분노를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도록 도와주고 그들을 용서하고 놓아주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Step 5: 상대를 이해하기

분노를 자주 경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행동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정확히 알게 된다면 아마도 다르게 행동할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Step 6. 신체의 반응을 관찰하기

당신이 화가났을 때 신체가 보이는 반응을 관찰해 보라. 심장박동의 증가, 거칠고 빠른 호흡, 두통, 복통, 근육의 긴장 등. 이럴 때, 어떻게 자신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를 학습하라. (심호흡, 10까지 헤아리기, 걷기, 음악듣기, 그림그리기, 독서, "나는 편안해"를 반복해서 말하기 등) 그리고 스스로 얼마나 진정했는지를 알아보라.

<참고> http://www.angermgmt.com, 안귀여루의 '분노조절 프로그램', Anger Management (Robert W. Westermeyer, Ph.D.), Kinderliebe Institute의 분노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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