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되는 경영환경(「남은 10개월」이 중요하다: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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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눈치정책」 기업은 불안하다/제조업 아니면 무조건 규제/일보다 더 비싸진 공장땅값
집권말기에는 기업들의 경영환경도 변한다. 기업을 끌어나가는데 고려해야될 변수들이 많아진다. 여당 수뇌부와 경제팀과의 조율이 어긋나고 책임있게 마무리해야할 주요 현안에 대해 나몰라라 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경제계도 흔들린다. 일부 기업은 경쟁력 강화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따라서 사회적 책임 문제도 관심밖에 있다.
『기업을 꾸려가기가 갈수록 힘이 들어요. 잇따른 선거와 맞물려 사회분위기가 들떠 있는데다 경제정책도 오락가락하는 것 같습니다.』
한 중소기업인은 『기업경영에 도움을 줄만한 얘기를 혹시나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조찬모임마다 찾아다니며 귀를 기울이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뿐 뚜렷한 방안이 안선다』고 말한다.
정부의 각료가 바뀔때마다 사람의 「색깔」을 점치고 정책의 향방을 가늠하느라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업종전환을 위해 공장부지를 물색하던 중소피혁업체의 사장은 『일본보다 훨씬 낙후된 기술로 어떻게 일본보다 비싼 땅값을 치러가면서 공장을 돌릴 수 있겠느냐』며 당혹스런 표정이다.
정부의 제조업경쟁력강화 대책은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고 기업의 경영환경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와 기업주·근로자 모두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한국 경제의 생명줄인 기업을 위태롭게 하는 방향으로만 자기주장을 해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정부는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기보다는 부동산투기의 주범으로 기업을 몰아붙였고 총선후에는 정부와 현대의 신경전으로 업계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의 기업이 지금처럼 안팎곱사등이가 된적도 없다. 기업의 환경이 예전과는 달라졌기도 하지만 6공이후 각 이해집단의 갈등과 반목이 기업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내에서조차 기업을 지원하는 것을 특혜로 보려는 시각이 강해 경제의 개방화와 함께 국내에 밀려들어오는 외국기업에 비해 국내기업이 불리한 대우를 받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에게는 증권시장을 개방하면서도 국내 기업에 대해서는 신규참여를 제한하고 있으며 기업이 신규투자를 위해 외국의 금융기관에서 싼 금리로 돈을 빌려오는 것조차 외환관리를 이유로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종합상사들은 제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주력업종 지정에서 제외됐으며 금융상의 규제조치도 받고 있어 앞으로 본격활동을 전개할 일본 기업과의 경쟁은 힘겨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현안들이 노태우 대통령의 잔여임기동안 어떻게 처리되느냐에 경제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으로는 경제문제를 다루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여전히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고 업계는 불만이 대단하다. 주요 정책의 추진속도가 떨어지고 일에 대한 열성도 덜하다.
국내 종합상사의 한 관계자는 『기업환경을 둘러싼 가장 민감한 부분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문제이나 이 역시 정리가 안된채 원론적인 수준에서 갑론을박만 거듭하고 있어 기업인의 의욕을 꺾고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신산업정책」의 경우 그 내용이 7차5개년계획 산업정책 부문에 제시된 것과 다를바가 없는데도 산업정책의 물줄기가 크게 바뀌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켜 기업인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한 정책담당자는 이와 관련,『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세제의 정비를 통해 합리적으로 해나가야하며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이 당면한 최대 과제는 이같은 외부적인 요인보다도 내부적인 경영혁신 노력의 부재다.
차병권 박사(경제학·전 서울대 교수)는 『최근 수년간 정경유착이 논란을 빚고 기업의 활력이 떨어진 것은 과거 정부의 보호속에서 커온 기업이 체질개선과 자생적인 성장력의 확대를 소홀히한 결과』라고 말하고 『무엇보다 기술혁신을 이루고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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