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세력 없이 기성 정당 퇴조/이탈리아 총선결과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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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고질적 정치혼란 가중될듯/경제실정·부정부패에 불만 표출
지난5,6일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결과는 냉전시대의 기존정당들이 후퇴하면서도 대체세력이 부각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번 총선결과는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이탈리아 정치를 당분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민당(DC) 사회당(PSI) 사민당(PSDI) 자유당(PLI)의 집권 중도좌파 4당연합은 선거결과 지난 87년 총선때보다 지지율이 크게 준 하원에서 48.8%와 상원에서 46.3%를 득표함으로써 상·하원에서 겨우 의석 과반수를 넘기는 패배를 당했다.
그밖에 과거 유럽 최강의 공산당이었던 좌파민주당(PDS)과 공산당 재건파도 지난 87년에 비해 득표율이 10% 이상 하락한 15% 내외를 득표함으로써 기성정당들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심화되고 있음을 드러냈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의 승리를 거둔 정당은 북부지방의 분리자치를 주장하는 롬바르디아연맹(LL)으로 지난 87년 총선에서는 득표율이 0.5%에 불과했으나 이번에는 9%를 득표,DC와 PDS·PSI에 이어 일약 네번째 정당으로 뛰어올랐다.
이탈리아는 제2차대전 이후 50차례 새 내각이 들어서는 극도의 정치혼란을 보여왔다.
과거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체제와 같은 1당독재를 막기 위해 철저한 비례대표제를 실시,의회에 진출하는 정당이 10개가 넘은 소당분립 체제가 불가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 냉전체제에서는 우파인 DC가 공산당 집권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워 국내의 가톨릭 세력과 미국등 서방세계의 응원을 받으며 중도좌파인 PSI·PSDI 등과 제휴,47년간 집권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DC가 주도하는 정부는 극도의 정치혼란속에서 효율적인 정책추진을 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이탈리아는 최근 재정적자 누계가 국내 총생산(GDP)과 같은 수준으로 확대되고 편지가 제 날짜에 배달되는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공공서비스가 엉망이 되는 한편,마피아로 대변되는 범죄 및 정치인들의 부정부패가 만연돼 국민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만 갔다.
냉전체제 종식 이후 처음 실시되는 이번 총선에서는 이같은 국민들의 불만이 표출됨으로써 집권 DC에 대한 지지가 급락했다.
냉전종식은 또 과거 유럽 최강이라던 공산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크게 줄여놓았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과거의 이데올로기 대립은 이제 무의미해진 것이다.
한편 LL과 같은 지역 이해 대변정당들의 부상은 그들이 미래 이탈리아를 이끌어갈 것이라는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부상은 단순히 기성정당들에 대한 국민의 항의표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탈리아 각 정당들은 지난 수년간 정치체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혁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이번 선거결과는 이런 움직임을 더욱 가속화 시킬 것이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과도기적 혼란이 심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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