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범죄(14) 김세원(과기원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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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생활 침해
지난달20일 정부는「개인정보 보호법」을 입법 예고했다. 그 동안 언론에서 행정전산망 구축에 따른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에 대해 수차 강조해왔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법안의 타당성에 대해선 앞으로 토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문제에 관심 있는 필자로서 몇 가지 궁금한 사항들이 있다. 첫째, 정부측에서는 개인정보노출로 억울함을 당하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의 사례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이 법안을 만들었을까. 둘째,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민단체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으며 개인정보 노출로부터 보호받는 권리가 인간의 기본권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했는가. 셋째, 제안된「개인정보 보호법」준비과정에서 시민단체들이 어느 정도 의견제시를 했는가.
이점들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매우 실망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국민들은 자신의 재학시절 성적표를 아무나가서 떼어볼 수 있다든 가, 주민등록번호를 쓸 때마다 나이와 생일이 노출된다는 사실 등에 별 저항감이 없는 것을 보면 우리들의 이런 권리의식은 매우 둔감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정보노출은 때로는 인간적으로 살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요한 문제다. 합법적인 노동운동이나 합법적인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기록이 정보시스템에 입력돼 기업에서 기피하고자 하는 인물로 분류돼 전국 어디에도 취업할 수 없는 사람들, 과거의 경미한 일시적 잘못에 대한 전과경력 때문에 전세방을 얻기 어려워 옮겨다녀야 하는 사람들, 과거의 정신질환 또는 기도원 수용경력 때문에 자식들이 동네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받는 피해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제 전산망이 발달해 어느 곳에 가든지 단말기에 주민등록번호만 입력시키면 개인에 관한 대부분의 기록이 쏟아져 나온다면 이들이 숨어서 조용히 살수 있는 곳은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게 될 것이다. 가능한 이들의 개인신상자료들이 업무상 필요가 법적으로 인정되는 관련기관에서만 사용되고 불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유지돼야하는 것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이 민주화된 선진국에서의 프라이버시보호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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