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받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국내 최초의 야구심판은 지난 20년 전 조선야구대회에서 주심을 맡았던 이원용씨(작고) 다.
오산학교에서 야구를 배운 이씨는 졸업 후 조선야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한국야구 최초의 심판이 되었다. 그후 동경유학생그룹인 윤치영·서상국씨 등이 주축이 돼 23년 조선야구심판협회를 정식 발족하게 됐다.
그러나 일제말기인 43년 조선체육회가 해산되면서 심판위원회도 명맥이 끊기다가 해방후인 46년 조선야구협회가 창설됐고 자유신문 주최의 제1회 건국도시대항야구, 4도시 야구대회 등이 잇따라 개최되면서 야구협회산하의 심판부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한국심판의 효시는 당시의 심판위원장을 맡았던 손행준씨(작고)를 꼽게 된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신인 실업팀에서 선수로 활약한바 있는 손씨는 아우인 손희준씨도 심판과 해설가로 활약, 형제가 한국야구발전에 기여한바 크다.
이후 올드 팬들이 기억하고있는 조점룡·오인환씨 등으로 바통을 이었고 50∼60년대 김정환·박상규·모무세씨 등이 명-심판으로 이름을 날렸다.
현재 프로야구의 심판들은 모씨의 후배 격인 민준기씨의 제자들이어서 3세대들이다.
지금까지 심판들은 모두 야구인 출신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들어 아마에서는 비 야구인 출신들도 간혹 눈에 띈다.
현재 프로야구에는 모두 32뎡(1군20명, 2군12명)이 있다.
이들은 모두 5명씩 4개조로 나뉘어 페넌트레이스 5백4게임에 투입된다.
5명이 1개조인 이유는 잦은 이동과 체력저하 때문에 번갈아 1명이 쉬어야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마야구의 경우는 33명이 경기 당 2만4천∼2만7전원의 낮은 수당을 받고 있으나 프로에서는 초창기 최저 월 봉 50만원에서 현재 70만원으로 오르는 등 어느 정도 처우개선이 됐다.
연봉은 능력이나 연륜에 따라 다르지만 최저 8백40만원에서 3천만 원까지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심판들도 팬들과 친숙해지는 등 인기를 끌고있어 광고출연으로 부수입을 얻기도 한다. 또 지난 90년부터 프로선수출신 야구인들이 심판진에 가세, 심판의 권위와 자부심이 한결 높아졌다. 태평양투수출신인 최계훈씨는 지난해 심판시험에 합격, 뛰어난 실력으로 올해 1군 리그에 곧바로 투입돼 첫 선을 보이게 된다.
◇프로1군 리그 조별 심판진▲A조=오광소·박찬황·이일복·지관구·오석환▲B조=황석중·김동앙·허운·김준표·임채섭▲C조=이규석·김량경·김호인·장진범·오덕환▲D조=백대삼·김찬익·조종규·원영권·최계훈(이상 20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