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100여 구글 홈피 그의 허락 없이는 못 고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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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황정목씨가 기자간담회에서 구글 로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뉴시스]

구글이 세계적인 검색 포털로 성장한 것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뛰어난 검색 기능을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나라의 기념일이나 유명 화가, 노벨상 수상자 등의 생일에 맞춰 순간순간 재치있게 바뀌는 구글의 로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로고를 통해 재미와 웃음을 선사하며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힘든 사람의 향기를 선사하는 것이다. 또 기업의 얼굴격인 로고를 함부로 바꿔서는 안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 구글의 혁신성을 강조하는 데도 성공했다.

구글의 로고를 이처럼 마음대로 주무르는 사람은 한국계 청년 황정목(29.미국 이름 데니스 황)씨다. 구글이 최근 설립한 한국법인을 둘러보기 위해 방한한 황씨가 17일 서울 내수동 갤러리 정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구글은 한국의 인터넷 발전상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한국의 많은 디자이너들을 채용해 앞선 인터넷 문화를 배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의 구글내 정식 직함은 '인터내셔널 웹마스터'. 하루 2억명 이상이 찾는 구글 본사의 홈페이지는 물론이고 100여개국에 서비스하고 있는 구글 홈페이지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다. 구글 내에서는 '홈피의 점 하나를 바꿀래도 황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권한과 책임이 막강하다.

황씨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던 3학년 때 인턴으로 구글과 인연을 맺었다. 그가 2000년 7월 14일 유럽의 바스틸 데이를 기념해 디자인한 '불꽃놀이 로고'가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눈에 띄어 구글에 눌러 앉게 됐다. 과학자 아이슈타인이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생일이나 월드컵, 올림픽 등을 기념한 로고를 400여 차례나 제작했다.

국내에서는 2001년 8월 15일, 구글의 영문 소문자 'l'에 태극기를 동여맨 '광복절 기념 로고'로 네티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황씨는 "한국인으로서 3.1절과 광복절, 추석 등 명절 때는 로고에 한국적 이미지를 꼭 넣고 싶었다"며 "국내 네티즌들의 격려 메일을 받고 가슴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그는 광복절 로고에 얽힌 뒷얘기도 들려줬다. 황씨는 "인도인들로부터 자기들의 독립일도 8월 15일인데 4500만명이 사는 한국의 독립일 만 기념한 것은 10억 인구를 무시한 것 아니냐는 항의 메일을 받고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 네티즌들은 구글 로고에 태극기가 나온 것을 두고 해킹당한 것 아니냐며 우려하는 메일을 보내왔다"며 웃었다.

황씨는 부모님들이 유학할 때 미국 녹스빌 테네시에서 태어났고 다섯 살 때 한국으로 들어와 경기도 과천시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2학년까지 마친뒤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혼인 그는 "초등학교 때 '둘리'나 '독고탁'같은 만화를 자주봤다"며 "수업중에 만화를 보다가 혼나기도 했는데 그 때 경험이 웹디자이너 일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스톡옵션 등으로 재산 규모가 상당하겠다는 질문에는 "노 코멘트"라고 대답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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