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당 주요 정객 마피아에 피살|혼란에 빠진 이 총선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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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악명 높은 이탈리아 마피아가 최근 집권 기민 당의 주요 정객 살바토레 리마를 암살, 이탈리아 정계에 파문이 일고 있다.
유럽 의회 의원인 리마는 마피아의 본거지인 시칠리아 섬 출신으로 기민당 내 숨은 실력자다.
목뒤에 총을 쏘는 전형적인「마피아 식 처형 방법」으로 살해된 리마 의원 사건은 여러 가지 점에서 과거의 마피아 살인 사건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리마는 집권 기민 당의 유력 정치인으로 출신지와 관련, 마피아와의 협력 설이 끊임없이 나돌던 인물이다.
줄리오 안드레오티 총리의 측근이기도 한 리마 의원은 시칠리아 주도 팔레르모 시장, 기민당 하원 의원을 역임하면서 마피아와의 거래를 통해 30여 년간 시칠리아를 비롯한 남부 지역에서 기민당 지지표를 이끌어 내 온 당내 공신이다.
또 다른 특징은 이탈리아가 2차 대전 후 지금까지 유지해 온 복잡한 선거 제도를 바꾸어 실시하는 첫 총 선이 내달 5일 실시된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복잡한 투표 방식은 마피아가 선거 부정에 개입할 여지를 제공,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특히 마피아는 특정 정당에 표를 몰아 주고 대가로 정치인들의 비호를 받는 거래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받아 왔다.
마피아는 오랫동안 기반을 굳혀 온 시칠리아 섬을 비롯한 남부 3개 주에서 토표 수의 약 25%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 총 선에서 새로 채택된 선거제도는 복잡한 투표 방식을 단순화시켜 마피아의 선거 부정 개입 여지를 크게 줄여 놓았다.
그밖에 리마 의원 피살 하루 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처에서 마피아 반대 운동에 적극적인 좌익 민주당 (구 공산당) 소속 지방 의회 의원 1명이 살해됐으며 리마 의원이 살해된 날에도 이탈리아 사회당의 벨기에 파견 사무실 직원이 살해되는 등 정치인 암살이 계속됐다. 이 같은 잇따른 살인 사건은 마피아의 정계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표시로 해석되고 있다.
마피아와 이탈리아 정치와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서 마피아 문제는 이탈리아 사회의 치유되기 어려운 고질적인 병폐가 되어 왔다.
그러나 마피아와 정계의 밀월은 지난 82년 한 마피아 단원이 죽음을 무릅쓰고 증언, 이탈리아 마약 조직이 공개되면서 정부가 마피아 조직 일부를 검거하고 이에 대해 마피아가 증언자의 가족을 몰살, 보복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정치권에 마피아 문제에 본격 대처하라는 국내외의 압력이 쏟아지게 된 것이다.
그 뒤 이탈리아 정계는 마피아에 대해 공격의 고삐를 서서히 당기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미국의 연방수사국(FBI) 체제를 모방한 대 마피아 경찰조직을 창설, 마피아 소탕 작업을 본 궤도에 올려놓았다.
이번 리마 의원의 암살 사건은 이 같은 정치권의 대 마피아 압력 강화에 대응한 마피아의 정치권에 대한 경고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달 5일 총 선을 3주정도 앞두고 일어난 이 사건에 대해 엔조스코티 내무장관은『마피아가 총 선을 앞두고 정국을 혼란시키려는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마피아가 최근 수년간 고조되고 있는 의회의 반 마피아 분위기를 퇴색시키려 한다고 경고하고 차기 의회에서 반 마피아 분위기가 누그러짐으로써 현재 진행중인 마피아 소탕작업이 방해받을 것에 대비해 21개 주 장관들에게 총선 뒤 구성되는 의회 진출 의원들의 마피아와의 관련사실을 조사해 비밀 자료로 확보해 두도록 지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안드레오티 총리는 스코티 장관의 발언이 과장된 것이라고 말하고 리마 의원과 마피아와의 관련 여부는 수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정부 내부에서 빚어지는 이 같은 불협화음은 아직도 마피아가 정치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혼돈 속의 정치」로 불리는 이탈리아 정치의 단면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가 되고 있다. <강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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