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신 못차린 민자/박보균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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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자당이 콩가루집안이 됐다.
이번 총선에서 『밤낮없는 대권싸움 때문에 아시아의 용인 우리경제가 지렁이로 전락했다』고 야당과 무소속 후보들로부터 실컷 두들겨 맞고 참패했음에도 집안꼴은 여전하다.
이번엔 여소야대의 책임소재와 문책대상을 놓고 삿대질이 한창이다.
김영삼 대표는 아예 『당엔 책임이 없다』면서 안기부의 흑색선전물 살포사건과 군부재자선거 부정시비쪽으로 패인을 몰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표 전날엔 안기부사건이 거의 영향을 못미쳤다고 주장해놓고 말이다.
총선전에 자신을 대통령후보로 정해주지 않아 졌다고 생각하는 김대표는 『그나마 부산·경남에서 압승을 안했으면 어떻게 될뻔 했느냐』고 특유의 「배짱」으로 나오고 있다.
여기에 서울·경기도의 민정계 후보들은 김대표가 총선을 대권예비전으로 밀어붙인게 결정적 감표요인이 됐다고 흥분하고 있다.
『김대표가 「부산정권 탄생 임박」식으로 세몰이를 하고 다녀 수도권의 중산층이 질색하고 고개를 흔들었다』『그 때문에 잘 달래둔 호남출신 유권자들이 돌아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태준 최고위원은 함께 책임져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거의 책임을 어느 한쪽으로만 몰 수 없는건 사실이다. 책임있으면 책임지면 되지,훌쩍 사표 내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네탓이다』『공동책임이다』하는 것은 도대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패인을 둘러싸고 어떻게 공방이 있을 수 있는가. 그 밑바닥엔 유권자들이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있는 대권갈등이 깔려있기 때문에 이런 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자당의 참패원인이 바로 거기에 있는데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니까 유권자들이 표로 질타한 것이다.
실제 지역판도 투표성향이 가장 덜한 서울의 결과를 따져보면 「중산층이반」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으며,이는 『3당통합 이후 대권놀음에 경제부진,정치불신이 심화됐다』는 의사표시다.
서울에서 민주당은 야권통합 위력을 상당부분 발휘하고,30평이상 중산층아파트,특히 고급아파트에선 국민당 후보들이 단연 돋보여 당선되거나 민자당 후보들의 패배요인으로 거의 작용했다.
안기부·군쪽의 선거관여시비가 악재임엔 틀림없지만 이는 가장 큰 참패원인이 「실패한 3당통합」에 대한 민심이반임을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도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거나,책임을 져도 함께 책임져야겠다고 나오는 것은 도대체가 본말전도다.
민자당의 진짜 참패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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