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면 끝장” 정면대결/돌파구 못찾는 민자 인책내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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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YS­민정계 대권 전초전 돌입/YS “벼랑끝 반전” 겨냥 밀어붙이기/김­박 최고위원 공동전선으로 대응/청와대선 분당사태 우려 강공 자제
총선참패에 대한 책임문제를 놓고 내분상태에 휘말려 들어간 민자당이 적절한 수습책을 못찾고 고심하고 있다.
총선참패의 문책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인정하지만 누가,어떻게 책임을 지느냐에 따라 차기 대권구도가 결정적 영향을 받게 되는만큼 민정·민주 공화계 등 각 계파는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배수진아래 정면대결을 벌이고 있다.
다시 말해 민자당은 총선참패에 따른 체제정비는 물론 3당합당 이후 갈등의 핵심이었던 차기대권구도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매듭짓지 않고서는 사태수습이 불가능할뿐 아니라 당의 진로마저 불투명해지는 벼랑끝에 몰려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3·24」총선이후 27일 오후 처음만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표의 청화대 회동내용에 여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측은 김대표측이 『당에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점에 대해 극도로 불쾌해 있다.
당에 책임이 없다는 것은 정부책임,즉 노대통령의 책임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YS가 주장하고 있는 「5개 패인」은 바로 노대통령이 총선의 책임자라고 시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노대통령 중심으로 이뤄진 지역구 공천,전국구공천 등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청와대측이 뾰족한 수습책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청와대가 총선패배상황을 전혀 상정하지 못한데다가 민자당 의석이 줄어들어 김대표를 너무 밀어붙였다가는 탈당과 같은 최악의 상황이 올지 모른다고 겁내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표의 민주계가 20여석으로 위축됐지만 민자당이 약화된 상황에서 그들이 행동통일을 한다면 민자당은 소수당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청와대측은 민정계 핵심과 여권주변에서 광범위하게 수습책에 관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중에는 대부분이 ▲세최고위원의 인책을 주장하고 ▲당정의 일대쇄신을 적기에 실시하자는 것이며 ▲일부는 분당사태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극단론도 있다는 것.
그러나 청와대내의 친YS계등은 이 기회에 아예 YS요구대로 5월 전당대회를 열어주는 쪽으로 어물쩍 넘어가자고 주장하는 안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노대통령이 어느 쪽 견해를 택할지가 관심이다.
김대표는 청와대가 이처럼 우왕좌왕하는 것을 알고는 27일 노­김의 단독회담이후인 28일 김대표의 기자회견을 마련하는등 배수진을 치고 있다.
적절한 회답이 없으면 뭔가 결단을 내리겠다는 「YS식 밀어붙이기」다.
민주계는 노대통령이 재임중 청문회대상이 될 수 있다는 등의 얘기도 퍼뜨리고 있다.
김대표측이 요구하는 것은 물론 선거책임은 정부측이 지고 5월 전당대회를 열어 체제를 정비할 때까지 현체제는 그대로 가자는 것.
김대표는 선거직후 『당에는 책임이 없다』고 했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자 한걸음 물러서 「조기수습」을 외치고 있다. 일부 당직자만 교체하는 소폭 당정개편선에서 끝내자는 것이다.
실제로 반YS라인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대표가 사표를 내면 그것으로 끝장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김대표의 공세는 「벼랑끝에서 반전기도」로 이해될 수 있다.
김대표는 이런 전략에서 민주계와 접촉을 강화하면서 인책대상에 올라있는 서동권 안기부장과 접촉설이 나오는등 자신의 입지강화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사표를 던진 김종필 최고위원과 박태준 최고위원은 25일밤 회동한 바 있어 김대표와의 「동반퇴진」공동전략을 확인한 것으로 보이며 신정치그룹과 박철언 의원 등 이른바 물갈이요구 그룹간의 내부접촉도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바탕 회전은 불가피하게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분위기속에 민정계 일각에선 세최고위원을 고문으로 후퇴시키고 노대통령이 전당대회까지 직할체제로 끌고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민정계가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이면에는 차제에 김대표를 대권후보 반열에서 밀어내자는 계산을 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공화계는 자파의 기반이 와해된 상태에서 민정계에 동조한다는 입장.
노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로 ▲YS와 타협하는 방안 ▲지도부 개편없이 당 3역만 교체하는 방안 ▲당지도부를 포함한 지도체제의 근본적 개편 등 세가지 방안을 꼽고 있지만 레임덕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되는 쪽을 선택하리라는 관측이 현재로선 지배적이다.
전반적인 사전조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열리는 27일 노­YS회동은 근본적 수습책을 마련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총선에 대한 원칙적인 책임과,국민에게 반성의 뜻을 보이는 수준에서 그칠 공산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미 김대표의 선공으로 사실상 대권전초전이 개막된 것이고,이것은 어느 누구도 쉽게 중단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민자당은 본격적인 대권싸움으로 옮아가게 됐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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