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지금 호기 놓치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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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2.13 합의'에서 규정한 북한의 초기조치 이행이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 핵 전략과 비핵화 의지를 분석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16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 국제정치학회(회장 하용출 서울대 교수) 학술회의에서 앤서니 남궁 박사는 "북한이 본격적 개방에 나서고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는 한 미국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의 전략적 사고를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의 수석 보좌관인 남궁 박사는 8~11일 리처드슨 주지사, 빅터 차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등과 함께 방북한 뒤 판문점을 통해 입국했다.

신언상 통일부 차관은 기조연설에서 "국제사회와의 소모적인 줄다리기는 북한 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어렵게 회복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북한이 지금의 호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실용적 북핵 접근=하 교수는 환영사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제3의 개국을 맞은 한국이 지향해야 할 북핵 접근법은 비전 있는 현실주의"라고 제시했다. 그는 "큰 틀에서 보면 2.13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현실주의란 미명 아래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비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북핵이 남한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낭만적 민족주의도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발제자로 나선 경희대 우승지 교수는 "북한은 핵무기.핵물질을 포기하지 않는 '낮은 수준의 비핵화'를 최대 전략 목표로 삼겠지만 역내 국가인 한.중.일은 수용할 수 없는 방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따라서 세분화될 가능성이 큰 비핵화 과정에서 협상력을 잃지 않으려면 성급한 경협 확대에 앞서 전략적 득실 계산을 해야 한다고 우 교수는 밝혔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기 위해 북한이 강경한 태도로 나갈 경우 북핵 해결의 큰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며 "북한이 핵실험 이후 지금까지 정세를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2.13 합의 이행 여부가 주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난관 셀 수 없이 많다"=북핵 해결의 전망과 관련해 해외 학자들은 신중론을 폈다. 중국 베이징대 주펑(朱峰) 교수는 "지난해 핵실험이 북한의 핵에 대한 환상을 드러내는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를 크게 손상시켰다"며 "중국은 장기적으로 북한이 보상과 핵 보유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2.13 합의대로) 의무를 다했으니 이젠 북한이 움직일 차례"라며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상황에서 북한이 이행하지 않는다면 비난에 휩싸일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의 한국 전문가인 알렉산더 보론초프 박사는 "2.13 합의는 넘어야 할 산이 셀 수 없이 많다"고 전망했다. 그는 "북한의 약속 이행 여부에 따라 미국 내 대북 협상파의 입지가 요동칠 수 있다는 점도 2.13 합의의 불안정한 기반"이라고 덧붙였다.

정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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