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스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때로는 무엇을 얼마나 오래 배웠는가보다 누구에게 배웠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훌륭한 스승을 만나 짧은 시간에 위업을 이룬 인물이 적잖다.

고대 그리스 테베의 에파미논다스는 BC 371년 승승장구하던 스파르타를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격파해 세계 전사에 이름을 남겼다. 당시 테베에 인질로 잡혀온 마케도니아의 황태자 필리포스2세는 그를 따라다니며 3년간 전술학을 배웠다.

인질에서 해방된 그가 BC 359년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즉위해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 군사개혁이다. 그는 에파미논다스의 가르침을 토대로 최강의 군사력을 길러내는 데 성공한다.

그후 알렉산더 대왕이 부친 필리포스2세를 따라 처음 전투에 나선 것이 BC 338년. 그로부터 5년 후 필리포스2세가 암살당한다.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이 필리포스2세에게 실전교육을 받은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던 셈이다. 그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학문을 배운 기간도 3년에 불과했다.

로마의 카이사르도 전략.전술을 익힌 것은 젊은 시절 당대의 명장 술라의 참모로 4년간 일할 때였다고 한다. 위대한 전략가로 로마군을 떨게 했던 카르타고의 한니발도 부친에게서 전법을 배운 기간은 6년 정도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훌륭한 스승으로부터 단기 집중 강좌를 받았다는 것이다. 수행기간이 길다고 잘 배우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재료가 좋아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숙수(熟手)의 솜씨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검도에는 '수(守), 파(破), 리(離)'라는 말이 있다. '수'는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고 따르는 배움의 첫 단계를 말한다. '파'는 그 가르침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 극복하는 단계다. 그래서 깰 '破'자를 쓴다. '리'는 고유의 유파를 만들어 스승의 곁을 떠난다는 의미다. 이른바 하산한다는 뜻이다. 훌륭한 스승을 만나면 이 사이클이 훨씬 크고 빨라진다고 했다.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은 한국 축구에서 더 절실한 얘기다. 히딩크 감독은 2000년 1월부터 2년6개월 동안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월드컵 4강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지금의 코엘류 감독은 올해 3월 취임해 이제 9개월이 지났다. 그가 우리 축구에서 어떤 스승으로 기억될지 궁금하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