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있는 후보와 없는 후보/이각범 서울대교수·사회학(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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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당직」으로 선택하자/누가 정말 자질갖춘 선량인가/바로 보고 판단해서 투표해야
우리사회에도 상식이 존재하고 있는가.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해야만 할 것이다. 왜 그런가. 정치가 정치답지 못하고,기업인이 기업인답지 못하며,공무원이 공무원답지 못하고,대학이 대학답지 못한 수많은 사례에 우리는 익숙해 있으며,이러한 상황들은 결코 상식으로 이해할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이번 선거 역시 상식을 거꾸로 가고 있으니 지극히 우리나라적이라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선량이라 함은 대중과 구별되는 기개와 의지와 비전을 갖춘 인사를 말하며,이렇게 보다 나은 사람을 대표로 뽑는 작업이 바로 선거인데,선거의 과정을 살펴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우리 사회제도의 많은 모순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아리뿐인 공명
공명선거를 정부·여당도 외치고,야당·무소속도 외치고 있으되 어느 누구도 실천할 의지가 없고,또 실현될 것이라고 믿지 않으면서 그저 외쳐대기만하는 공명선거라는 언어의 2중성을 보아도 선거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고 견본이다.
또한 다수가 장기적 비전을 믿지 않기에,선거의 대목을 놓칠수 없다고 전전긍긍하는 단기차익의 시각과 한탕주의 역시 우리사회의 단면이다.
선진국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선거에서는 돈을 내놓는 사람들이 유권자들이어야 한다. 후보자들은 멋진 정책을 개발해 유권자들이 흔쾌히 지지하고 기부하고 자원봉사할 수 있는 상품으로 내놓아야 한다. 이것은 자유시장경제에서 경쟁이 기술개발을 끊임없이 부채질하고,그리하여 끊임없이 경제를 발전시켜 나갈수 있는 원리와 같다.
우리의 경우 유권자가 돈을 받고 입당원서를 내면 당비를 내는 대신 또 돈을 받는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정책이라는 상품보다는 「연줄」이 중요한 승리의 수단으로 되고 있다.
기득권층의 안정심리에 호소하는 권력정당의 논리,지역감정을 부추기고 편승하는 정파의 논리,그리고 돈으로 줄을 대고 끈을 만들려는 금권선거의 논리는 합리적 정책대결보다는 구시대적이고 퇴행적인 연줄로 유권자들을 얽어매려는 비합리적 태도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인 제도인데 그 국민이 표를 돈으로 바꾸어 버리니 주인없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분수에 넘는 돈을 벌려는 기성세대들의 작태는 대학생들까지 오염시키고 있다. 옛날 4월의 경무대 앞길에서,6월의 남대문로에서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우던 의기로운 젊은이들은 어디로 가고 양식과 순수성을 잃어버린 대학생들이 이념이고 정의고 팽개치고,용돈만 생기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리지않고 젊은 몸을 밑천으로 기웃거리고 있다.
경제계에서는 누가 승리하는가의 여부보다 빨리 선거가 끝나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산업노동시장을 벗어나,정치노동시장으로 단기차익을 찾아나선 사람들때문에 제조업의 구인난이 가중되고 있는 것은 차치하고라도,선거바람으로 노동시장의 동요가 생기면서 남아있는 인력의 생산성마저 영향받고 있는 실정이다.
유권자의 호주머니에 푼돈으로 굴러들어가고 있는 돈들은 정치자금의 조성과정에서 수서사건과 같은 특혜나,기업의 준조세에 의해 목돈으로 조달되고 있다. 결국 선거를 위한 자금조달이 기업의 자금난을 가중시켜,정치를 지탱하는 경제 그 자체의 위기를 심각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로 경제흔들
민주주의는 비용이 많이 드는 체제다. 아마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체제가 대안으로 존재할수만 있었다면,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포기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대의 인류가 비용이 드는 민주주의 외에 뾰족한 대안으로 내세웠던 것은 실패한 사회주의밖에 없다. 그래도 상식이 지켜지고 있는 나라에서는 민주주의의 비용을 그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화하고 있다.
상식이 없는 사회,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우리의 경제수준이 지탱할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안은 무엇이 돼야하는가. 민주주의를 포기해야 하는가,아니면 우리사회의 상식선을 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자명하다. 인류가 아직도 찾지못한 민주주의의 대안을 우리가 무슨 재주로 마련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사회가 상식으로 움직여질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제일의 상식이라면,우리 사회에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고,현실에 철저한 의식을 가지며,원칙과 정도에 의해 정책을 펴나가려는 집단이나 개인을 가려내서 선출하는 투표행위가 될 것이다. 기존의 정당이나 후보가 못마땅하다고 할지라도,그래도 상식에 가까운 후보를 가려내 투표할 수 밖에 없다.
평소 자료를 충실하게 모으고 의정활동을 똑똑하게 해 동료의원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고 있던 후보,야권통합이라는 목표를 위해 소속정당에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지사형후보,뚜렷한 정책을 제시하고 좁은 지역의 이익보다는 나라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선량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다.
그대신 풍치지구의 해제,그린벨트의 해제 등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한 공약을 펴는 사람이나 돈으로 선거를 이기려드는 사람,지역성을 들먹이는 사람,평소에 알려진 얼굴을 믿고 국회를 연기장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은 선량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유권자들은 아직도 전자의 자격있는 후보보다는 후자의 자격없는 후보에게 더 많이 쏠리고 있는 것 같다.
○기권은 악순환만
선거에서 기권하지 않는 것은 그만큼 돈과 조직에 의존하는 후보의 돈과 조직력을 상대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투표율이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이들은 철저한 돈과 조직의 신봉자가 돼버릴 것이며 국민은 스스로 그다음의 정치에서 식상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후보들중 차선의 선택도 하지않은채 투표당일의 등산과 낚시에 연연하는 투표자는 이후에도 정치에 대해 말할 자격을 갖고 있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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