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퇴로 놔두고 소모적 싸움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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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열린우리당 이기우 원내공보 부대표는 12일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열린우리당 등 6개 정파(정당) 원내 수장들이 전날 '18대 국회에서 개헌 문제를 처리할 테니 개헌안 발의를 유보해 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청와대가 "16일까지 원 포인트 개헌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으면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며 강경하게 나오자 당혹스러워 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청와대가 '명분 있는 퇴로(退路)'를 놔두고 소모적 싸움의 길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했다. 6개 정파의 합의로 사실상 정치적 소멸 선고를 받은 개헌안이 발의된다면 부결되는 사태가 벌어질 게 뻔하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각 정치세력들은 청와대의 요구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당 대표가 명확하게 '18대 국회에서 특위를 꾸려 국회가 개헌을 주도하겠다'는 것 등 다섯 가지 입장을 밝혔는데 뭘 더 하라는 건지 청와대의 요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는 '18대 국회에서 개헌한다'는 약속을 원하는 것 같은데 17대가 어떻게 18대의 일을 약속할 수 있겠느냐"고도 했다. 더 이상의 추가 행동은 없을 것이란 얘기였다.

열린우리당에선 한나라당과 청와대 양쪽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청와대를 향해선 "(입법부에) '16일로 날짜까지 박아 당론을 정하라'고 요구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한 의원)면서도 "(6개 정파 합의에 대한) 당론 추인 절차를 밟으면 상황이 종료된다고 판단한다. 다된 밥에 재 뿌리지 말라"(최재성 대변인)고 한나라당을 겨냥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르면 13일 당론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정치권은 이후의 파장을 우려했다. 청와대든 야권이든 어느 한쪽이 지금의 입장에서 후퇴하지 않는 한 결국 개헌안은 발의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회에서 부결되는 사태를 맞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개헌안은 발의(공고)되면 국회에서 60일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이 "6개 정파 공동으로 어떻게든 발의는 막아야 한다"(최 대변인)며 분주하게 움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고정애.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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