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형사재판 빨리 끝내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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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서비리와 관련된 4명의 국회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확정판결은 대상이 현역국회의원들이고 14대 총선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특히 관심을 끈다.
다른 사건으로 기소된 국회의원 2명에 대해서도 총선거전으로 대법원의 재판기일이 정해져 있어 현역의원들의 피선거권 박탈사례는 더 늘어날 형편이다.
대법원의 이같은 재판진행을 두고 사법부가 마치 정치적 외압에 의해 이례적으로 재판을 서두르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는 모양이다. 이들중 상당수가 여당의 재공천을 못받고도 무소속출마를 공언해 왔으므로 출마를 봉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시비다.
그러나 1년전 수서사건이 준 충격과 국민의 분노,관련정치인에 대한 응징여론 및 명백한 실정법위반행위를 생각하면 이제와서 재판이 왜 이렇게 빨리 끝났느냐고 시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신중하고도 신속한 재판은 누구나 바라는 바고,신속에 쫓겨 신중함을 잃지만 않는다면 빠른 재판은 오히려 권장해야할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제는 지금까지 사법부가 정치인이 관련된 사건,또는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신중하지도,신속하지도 않았다는 인상을 종종 주어왔다는 사실이다. 그로 인해 사법부의 독립이 훼손되고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산 예가 적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사법부가 이번 판결을 통해 정치인과 관계된 사건에 보다 더 엄정하고 독립적인 위상을 정립하는 계기로 삼도록 당부한다. 사법부는 마음만 먹으면 이같은 의지를 실천할 기회를 당장 얼마든지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수서보다 훨씬 앞서 일어났던 동해보궐선거 후보매수사건이 지금 대법원에 계류중이고,아직 고법단계에 있지만 상공위 뇌물외유사건 같은 것도 있다. 이들 사건에 관련된 의원중에는 집권당의 비호속에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같은 국회의원이면서 재판절차가 차별 적용되는 듯한 사례가 있으면 사법부가 여전히 정치권력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기왕에 사법부가 새로운 각오를 보이려면 계류중인 나머지 의원관련사건들도 가급적 신속히 유·무죄여부를 확정해 주는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재판을 질질 끌거나 총선후 유죄가 확정되면 또다시 보궐선거를 치러야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적어도 사법부가 13대국회의원 관련사건은 13대 임기내에 처리해 주는게 좋을 것이다.
끝으로 우리는 현재 진행중인 14대총선의 각종 선거법위반 사건들에 대해 앞으로 사법부가 사명감을 갖고 신속하고 엄정하게 판결해줄 것을 미리 당부해두고자 한다. 개정 국회의원선거법에 규정된 1년이내(1심 6개월,2·3심 각 3개월) 재판완료시한은 절대 사문화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사법부는 현재 검찰의 소추권행사에 시비가 벌어지고 있음에 유의,적어도 재판과정만은 정치성의 오류가 파고들지 않도록 해야겠다. 아울러 정치인들은 어떤 탈법·불법을 저질러도 당선만 되면 사법적 판단은 질질 끌어 임기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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