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상속세 빚면제」 속앓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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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양도세 과세후 채무관계 추적 방침/“부채면제는 세계적인 추세” 지적도
「상속 재산 가운데 빚부분에 대해 상속세를 매기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본지 25일자 22면,23면 보도)에 세무당국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법은 법이지만 현실은 현실이라 예컨대 앞으로 10억원짜리 건물을 자식에게 물려주면서 일부러 8억원의 은행빚이나 임대보증금을 안고 넘겨 결국 2억원에 대해서만 상속세를 무는 일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지난번 현대그룹에 대한 과세와 마찬가지로 결국 조세법정주의에 충실할 것이냐 아니면 실질과세원칙을 따를 것이냐 하는 문제인데,여기에는 우리의 세무행정이 얼마나 정교한가하는 문제도 얽혀 있어 그렇게 간단히 결론을 내고 치울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재무부 당국자의 말마따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수긍은 하지만 그런 판결이 한 10년뒤에 나왔으면 더 좋을뻔 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상속세를 많이 내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전 상속이 만연하고 있는 풍토에서 그간 세무당국은 『상식적으로 아버지와 아들간에 돈을 꿔주고 받는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세무행정을 펴왔고,이에 대해 지나친 행정편의주의라는 비난이 갈수록 거세져 왔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도 그같은 세태가 법정신에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번 판결에 따라 빚을 안고 넘겨지는 재산에 대한 상속세 관련규정은 이날짜로 무효가 됐다. 이에 따라 세무당국은 앞으로 그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상속세 대신 양도세를 일단 과세하고 나중에 그 빚을 본인이 갚지 않았을 경우에는 다시 증여세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들고 나왔지만,이같은 방침도 어디까지나 세무행정이 국민생활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정교하게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임은 물론이다.
임희택 변호사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원론적인 판결』이라며 『과거에는 상속세의 세원포착이 어렵다는 점을 들어 채무액을 반사적으로 부인해왔지만 이제 국세청의 과세조사능력이 많이 향상된만큼 사후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김우택 공인회계사도 『부채부분에 대해서 상속세 등을 면제해주는 것은 국제적인 추세』라고 전제,『국세청이 사안별로 잘따져 과세해야 한다』고 말했다.<박의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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