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선거도둑이 세금도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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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전남 화순군 주민들은 재.보선 선거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일부는 '내 탓이오'를 연발하며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이렇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군수로 당선된 A씨는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다 불리할 것 같으니까 사퇴를 했다. 이에 따라 그해 10월 25일 화순군이 무려 5억원을 들여 보궐선거를 치렀는데 A씨의 동생이 출마해 당선됐다. 형제끼리 군수 자리를 주고 받는 데 주민 세금 5억원이 들어간 것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처음이 아니다. 2004년에는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무효가 된 남편을 대신해 부인이 출마했다가 당선된 적도 있다. 남편의 자리를 부인이 이어받도록 군이 5억여원의 세금을 쓴 꼴이다. 화순군은 선거로 군수를 뽑기 시작한 1995년 이래 3명의 군수가 선거범죄 등으로 물러나 재.보선을 치렀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화순군민들에게 돌아갔다. 화순군은 90년만 해도 광주의 위성도시로 번화했다. 인구도 8만7000여 명이었다. 하지만 이후 주민이 계속 떠나 현재 인구는 7만2000여 명에 불과하다. 부동산 경기도 썰렁하고 미분양 주택이 남아돈다. 주민을 위해 쓸 예산도 부족한데 재선거 비용을 대느라 허덕대니 지역은 더 낙후될 수밖에 없다.

주민 김모(66)씨는 "유권자가 선택을 잘못해 세금만 낭비했다는 말이 나올 때마다 숨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내 고장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는 주민의 생활을 뒤바꿔 놓는다. 한 표를 잘못 행사하면 주민을 위해 써야 할 세금이 엉뚱하게 재선거를 치르는 데 낭비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온다. 그런데도 유권자들은 지방선거를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다.

역대 재.보선 투표율은 20~30%에 머물고, 주민들은 내 고장에 누가 출마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자격 미달자 당선→선거범죄로 당선 무효→재선거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아까운 주민의 세금만 날리는 것이다.

대구 경실련 조광현 사무처장은 "주민들이 지방선거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들만의 잔치'가 돼 풀뿌리 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 우려했다. 이제 유권자들은 "올바른 후보를 뽑아야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김종윤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