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출연 출마 연예인 간접선거운동 여부 싸고 혼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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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출마 연예인의 선거기간중 방송·연예활동을 간접선거운동으로 봐야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미국 등 외국에서는 간접선거운동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국내에선 딱 부러진 기준이 없어 의견이 분분하다.
민자당 공천으로 총선에 출마할 탤런트 이순재씨(본명 이순재)의 TV드라마 출연이 최근 논란을 빚고 이주일·강부자씨 등 출마하지 않았더라도 정치활동을 한 사람들도 화제가 되는 가운데 이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한편이 눈길을 끈다.
이 논문은 건국대 유일상 교수(45·신문방송학과)가 발표를 앞둔 『정치선거방송의 균형성』으로 정당·연예인들의 구체적인 방송 선거활동과 규제사례 등을 담고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외국의 예. 그중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의 경우는 주목된다. 지난76년 레이건이 공화당 대통령후보 지명전에 나섰을 때였다.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아드리안 바이스 방송사가 레이건이 주연을 맡은 20년전 영화 한편에 대한 방송 여부를 놓고 FCC(미국연방 커뮤니케이션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다.
상대방 후보자에게도 「동등시간부여 규정」을 적용하느냐, 마느냐의 사안이었다.
이때 위원회는 경쟁 후보자가 요구하면 방송사측이 같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레이건이 현역배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가 TV에 출연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유권자들에게 「신원확인효과」를 나타내고 이것이 득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앞서 69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미국의 지방방송국인 WBAX사의 일기예보진행자가 출마 사실을 감춘채 방송을 계속했다.
이 사건은 당시 세인의 관심을 끌었고 FCC는 「레이건 출연 영화사건」과 흡사한 결정을 내렸다.
뉴스가 아닌 일기예보 진행자도 방송의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하므로 그 영향력을 감안, 경쟁 후보자가 동등한 방송시간을 요구할 때 방송사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70년대 전후 미국사회에 불어닥친 이같은 시비가 전반적으로 잠잠해진 것은 74년. 미국순회 고등법원의 「폴센 사건」판결이 큰 영향을 미쳤다.
폴센은 한 지방 방송사를 대표해 소송을 제기한 사람의 이름이고 이 사건은 골치 깨나 아픈 「동등시간 부여 규정」탓에 생겨났지만 오히려 문제해결의 선례를 남겼다.
후보자가 방송에 일단 출연하면 출연시간의 양이 문제될 따름이라는게 법원 견해였다.
다시 말해 후보자의 방송출연여부와 출연한 프로그램 내용을 문제삼기보다 득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출연시간을 중시, 경쟁 후보자가 방송출연을 요구하면 방송사측은 동등한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법원은 판결했다.
영국 BBC등 유럽의 방송사들이 견지해온 출마 연예인의 방송활동에 대한 시각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에선 방송사마다 「상식」이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MBC측은 이순재씨의 드라마 출연에 정치적 배경이 없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출마자는 아니지만 국민당 창당발기인인 강부자씨는 KBS 제2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 자리에서 밀려났고 같은 발기인인 이주일씨는 SBS-TV쇼프로그램 진행을 계속 맡고 있다.
유교수는 『외부기관의 간섭 없이 각 방송사가 나름의 기준을 정할 때가 됐다』며 『그러나 이같은 기준이 잘못되면 도리어 방송 자유화를 해칠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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