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빛|김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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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골목 안 국밥 집에는 두 사내가 마주 앉아 허름한 저녁을 들고 있다, 뚝배기 속으로 달그락거리던 숟갈질이 빈 반찬그릇에서 멎자 한 사내는 아쉬운 듯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붙여 물고 유리창 밖을 내다본다, 마주앉은 사내는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식은땀은 닦아 낼 겨를도 없이 남은 국물을 들어 마시고 마지막 깍두기를 씹고 있다, 언제 왔는지 어둠이 깊은 심연처럼 그릇 바닥에 고여 어둑히 내다보면 구겨지는 골목으로 벗어나며 저 사내에게도 갈 곳이 있다는 것일까 어느새 웃자란 수염이 차지한 뾰쪽 턱을 비껴 추위에 움츠린 겨울의 가 등들이 무심한 듯 길바닥에 일렁거리지만 불빛이 감추는 망막 때문에 유리창 안쪽으로 따뜻한 것들이 기웃거리는지 아까부터 군청색 작업복의 사내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대책 없는 허술한 앞날일 뿐 잿빛 잠바도 모르는 사내들의 길 위로 어디서나 흔해빠진 길들을 차지하려고 그대들은 저렇게 바쁘게 오고 간다.

<약력> ▲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출항제』 당선 ▲시집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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