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신라 장인의 솜씨 되살린다|금속 유물 재현 김인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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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신라의 고도 경주에 5대째 살고 있는 김인태씨 (55·삼선방 대표·경북 경주시 하동 201의26)는 신라 천년의 숨결을 재현하는데 평생을 바쳐온 사람이다.
신라의 찬연했던 문화를 한 몸으로 말해 주는 금관 등 신라시대의 유물을 완벽하게 재현, 진위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솜씨는 문화재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르는 정도.
그가 만든 신라 임금의 금관·금모·허리띠인 요대, 왕비의 귀걸이와 팔지, 용맹을 떨치던 장수들의 청동검 등은 경주 천마총, 공주 무령왕릉, 천안 독립기념관 등의 유물 전시관에 비치돼 진품의 정교하고 찬란한 자태를 대신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경주에서 태어난 그가 중학교를 마치고 장인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아내를 잃은 그의 아버지가 불교에 귀의, 절로 들어가면서 흙으로 풍속인형을 만드는 한 장인의 손에 아들을 맡긴 데서 비롯됐다.
그는 13세부터 7년여 고용살이를 하면서 선생의 배려로 틈틈이 옛 경주 박물관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는 당시 그곳에 진열돼 있었던 신라 금관에 매달려 흔들리는 영락의 아름다움이 그의 일생을 결정짓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진열관 앞에서 넋이 나간 듯 온종일 눈이 빠지도록 금관을 들여다보고 난 후 집에 돌아와서는 몇날이고 밤을 새워가며 이를 만들어보는 일에 허비했다.
62년부터 8년 정도는 아예 박물관과 집만을 오가며 신라시대 갖가지 유물 재현에 몰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물에 대한 자료나 사진이 없어 그는 늘 박물관에 가 『눈으로 사진을 찍어와야 했다』는 것.
그리고는 진품 그대로의 모습이 나타날 때까지 두문불출하며 제작에 전념해 온 그의 솜씨는 70년대 초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때 마침 정부에 의해 경주 10개년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경주 박물관 등에서 전시용으로 필요로 하는 금속 유물을 만들어 1인자의 자리를 확보해가기 시작했다.
그는 연이어 75년 공개된 천마총의 외부 관람객 공개용 모조 금속 유물 대부분을 제작했고 무령왕릉·독립기념관·서울 중앙박물관을 비롯, 육군 군사 박물관·한국 마사 박물관 등에 금관에서 투구·마구 장식에 이르기까지 금속 공예 모조품이 필요한 곳은 거의 도맡다시피해 그동안 수천여점을 만들어냈다.
금관을 하나 만드는데는 하루 10시간씩 열흘을 꼬박 매달려야 한다. 금관의 골격을 만들어 다듬고 강철 송곳으로 문양을 넣은 후 비취 등을 직접 깎아 만든 곡옥과 영락 4백58개를 매달 구멍 역시 모두 뚫어야한다. 그리고 금사와 금못을 이용, 금관의 모양을 최종적으로 갖추게 되는데 마지막은 순금도금으로 마무리한다.
그러나 40여년간 독학으로 익힌 이런 힘든 작업에 따르는 수고비는 밝히기 부끄러울 정도로 적어 그가 7년전 경주 민속공예촌에 입주하면서 얻어 쓴 융자금과 이자를 갚느라 아직도 허리가 휠 정도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돈벌이에 비교가 안 되는 즐거움을 얻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직업의 귀천을 안 가리고 하찮아 보이는 일도 몇대씩 긍지를 가지고 이어가는 일본인들의 정신이 부러워 보였다』는 그는 아버지의 어려움을 쭉 지켜 보아온 대학 사학과 출신의 2남이 얼마 전부터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나서『일에 대한 힘과 사랑이 더욱 샘솟는다』고 했다. <고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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