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局 '집단학습' 알면 중국의 미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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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대표하는 신문은 인민일보다. 당 기관지로, 대중적 인기는 많지 않다. 그러나 당 간부나 베이징 주재 외국 특파원은 꼭 본다. 중국의 시정방침이 사론(社論) 등을 통해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런 중국에서 중국이 나아가는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바로미터가 생겼다. ‘정치국 집단학습’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등 국정운영자가 모두 참가한다.

정치국 집단학습에서 이들이 무엇을 배우는가를 보면 중국 지도부의 관심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23일 오후. 중국 지도자들의 숙소이자 사무실인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화이런탕(懷仁堂)의 한 회의실. “시작합시다”라는 후 주석의 말과 함께 강의가 시작됐다. 량후이싱(梁慧星) 사회과학원 연구원과 왕리밍(王利明) 인민대 교수가 각기 40분씩 강의했다. 내용은 일주일 전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 ‘물권법(物權法)’. 강의 후 30여 분 질의ㆍ응답 시간이 있었고, 이어 후 주석이 결론을 냈다. 물권법 내용을 지도자들부터 제대로 파악해 민생을 챙기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제40회 정치국 집단학습은 이렇게 끝났다.

정치국 집단학습이 처음 열린 것은 2002년 12월 26일. 후진타오가 당 총서기로 선출된 지 40여 일 만이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마오쩌둥(毛澤東)이 태어난 지 109주년 되는 날이기도 했다. 첫 학습의 주제는 ‘헌법을 배우자’였다. ‘인치(人治)에서 법치(法治)’로의 정책 전환을 바라는 후 주석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 지도부 전체가 참가하는 집단학습이 얼마나 자주 열릴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그로부터 지난달까지 4년4개월간 무려 40회의 집단학습이 있었다. 평균 40일에 한 번꼴로 공부해 집단학습을 제도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중국의 집단학습 전통은 후 주석이 처음은 아니다. 마오가 일찍이 옌안(延安) 시절 집단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80년대엔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의 주도 아래 법률강좌가 여러 차례 열렸다. 장쩌민(江澤民) 시절에도 유사한 학습이 12차례 있었다. 그러나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집단학습을 제도화한 것은 후진타오 주석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후진타오는 1년에 보통 9차례 정도의 집단학습을 개최한다.

후진타오가 집단학습을 강조하고 또 정례화한 이유는 무얼까. 중국 공산당의 집정(執政)능력 강화가 가장 큰 이유다. 위윈야오(虞云耀) 중앙당교 부교장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000~3000달러일 때 사회 모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후 주석이 정권을 잡은 때가 바로 이 시기란 것이다. 국내외적 도전에 직면해 살길은 오직 당의 집정능력 강화란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란 이야기다. 이를 위해 후진타오-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투 톱은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첫째, 중대 결정을 하기 전에 반드시 관련 지식을 잘 공부한다. 둘째, 각계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청취한다. 셋째, 집단토론을 충분히 한다.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정치국 집단학습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정치국 집단학습의 내용은 치국(治國)과 관련해 매우 실용적이라는 게 그 특징이다. 2005년 6월 27일, 정치국은 ‘국제에너지자원 형세와 중국에너지자원 전략’을 주제로 23회 집단학습을 가졌다. 그리고 3일 뒤 후 주석은 러시아를 방문, 러시아 석유를 확보하는 ‘석유 외교’를 펼쳤다. 고구려사 문제로 한ㆍ중 관계가 껄끄러웠던 2004년10월엔 ‘중국민족관계사의 몇 가지 문제’를 주제로 택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문제가 터졌던 2003년 4월엔 사스 예방을 공부하기도 했다. 중국의 인터넷 인구가 10%를 돌파한 지난 1월엔 ‘세계인터넷기술 발전과 중국인터넷문화 건설’이 주제가 됐다. 특히 2003년 11월의 ‘15세기 이래 세계주요국가발전에 대한 역사적 고찰’ 집단학습은 중국의 대국굴기 열풍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집단학습이 얼마큼 중요한지는 그 준비의 철저성에서 잘 드러난다. 한 주제와 관련해 보통 3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준비한다. 대부분 여러 단계를 거쳐 집단학습 준비가 이루어진다. 먼저 중국 지도부의 비서실 격인 중앙판공청의 지도 아래 중앙정책연구실에서 주제를 선정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해당 부서에서 관련 연구기관과 협조해 강사 선발에 나선다. 강사는 4회 집단학습 때 세 명을 초청하기도 했지만, 나머지 모든 경우에선 두 명이 선발됐다.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다는 뜻도 있지만, 강사가 불의의 사고로 참석하지 못할 경우를 예방하는 측면도 있다. 강사는 원고 작성 뒤 최소 두 번, 많게는 세 번 정도 시험 강의를 한다. 여기에서 강의 속도, 강사의 소리 높낮이, 어조 등 모든 게 점검된다. 만족스럽다는 평가가 나올 때까지 연습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강사로 선발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승진 기회가 주어지기도 해 이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2회 때 ‘세계경제형세와 중국경제발전’을 강의했던 중국사회과학원 장샤오쥐안(江小涓)은 국무원 정책연구실 부주임에 임명됐다. 또 7회 ‘세계문화산업발전과 중국문화산업발전전략’ 강의를 맡았던 사회과학원 장시밍(張西明)은 당 선전부 이론국 국장으로 승진했다.

강사는 교육부 등 정부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사회과학원ㆍ중앙당교 등 싱크탱크 출신, 그리고 대학 교수가 많다. 이제까지 81명의 강사 중에선 중국사회과학원 출신이 16명으로 가장 많아 중국 싱크탱크로서의 위상을 확인시켰다. 그 다음은 인민대가 군사과학원과 함께 6명의 강사를 배출했고, 베이징대는 4명, 칭화대는 3명이었다. 강사 나이는 38~73세까지 다양하나 보통 50세 전후가 많다고 한다. 강의는 중난하이 화이런탕의 크지 않은 회의실에서 진행된다. 긴 타원형 테이블이 놓여 있고, 정부 부처 고위간부와 정치국 위원, 후 주석 등 40명가량이 집단학습에 참석한다.

마오와 같은 카리스마형 지도자가 아닌 후 주석으로선 바로 이런 집단학습을 통해 당 중앙의 의견을 일치시키고, 이견을 줄이며, 사상을 통일해 중국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정책의 투명성을 높인 것도 큰 소득으로 꼽힌다. 신화사는 매 강좌가 끝날 때마다 그 내용을 공개한다. 이들이 배운 내용이 정책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정치국 집단학습’은 중국을 읽는 키워드가 된다.

유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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