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랑길·법사랑길·화사랑길' 사랑길만 200개 넘어

중앙일보

입력

노랫말에나 나올법한 '사랑의 거리'를 서울 시내 곳곳에서 보게 됐다. 지난 5일 7대 광역 시.도의 101개 기초자치단체 내 집주소를 동 이름과 번지 대신 도로명과 고유번호로 전환하는 '도로명주소 표기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면서다. '사랑길' '나래길' 등 한글 이름을 단 도로가 많이 생겼다. '찾기 쉬운 도로명 주소 만들기'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번 사업에 대해 "기존의 딱딱한 동 이름보다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라는 반응과 함께 초기 시행착오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랑구의 다사랑길. 간선도로에 접해 있는 소로(小路) '다사랑길'에서 갈래갈래 뻗어나가는 골목길에 각각 다사랑1길부터 9길까지 이름 지었다. '사랑의 길'이 아닌 '사랑의 미로' 같은 모습이다.


◇서울시내 '사랑길'만 31곳=새로운 도로명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곳은 서울 시내에만 31곳이나 된다. 서울시내 25개 구 중 도봉구, 강남구 등 절반에 가까운 12개 구에 각종 사랑길이 들어선다. 간선도로에 연결돼 있는 소로(小路)만 집계했을 때다. 소로에 연결돼 있는 '사랑길1' '사랑길2' 등 골목길까지 더하면 200여개가 넘는다.

같은 사랑길이라도 이유는 제각각. 영등포구의 '글사랑길'은 영중초등학교와 접한 길로 "학생들이 글을 사랑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마포구의 '법사랑길'은 공덕동 서부지방법원 부근 도로인 점을 감안해 붙여졌고 강서구의 '한사랑길'은 예식장 주변 도로에 맞게 지어졌다. 가장 많은 사랑길이 위치한 곳은 영등포구. '늘사랑길' '화사랑길' 등 무려 6곳이다. 강남구와 마포구는 각각 5곳, 관악구는 3곳이다.

◇취지 좋지만 혼선 불가피="주소가 간결해져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길 찾기가 쉬워질 것"이라는 행자부의 전망과 달리 당분간은 혼선이 불가피할 듯하다. 100여년을 구와 동으로 구분해 찾던 길을 앞으로 동을 제외한 도로명만 가지고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울 종로구 인사동 12번지'는 앞으로 '서울 종로구 홰나무길 31-1'로 찾아야 한다. 종로구내 87개 동으로 지역을 구분하는 대신 734개의 길을 염두에 둬야 하는 것이다. 각 동을 관할하는 동사무소 이름은 그대로라 더 헷갈릴 수 있다.

우편물 배달도 혼선을 빚을 듯하다. 우정사업본부 물류기획팀 박찬우 계장은 "98년부터 길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으나 아직 전국적으로 절반도 바꾸지 못했다"며 "오랜 시간에 걸쳐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바뀐 도로 간판들이 관리돼지 않아 도로명이 지워지는 등 알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강남 우체국 배달부 손점숙 팀장은 "현재로서는 주소 DB화가 구축되지 않아 새 주소만 입력된 우편물일 경우 기존 주소로 일일이 바꿔 배달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은 큰 문제가 없지만 앞으로 물량이 늘어날 경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토로했다.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차량은 기존의 메모리에 새 주소 네트워크를 업데이트 시켜야 한다. 그러나 메모리 용량이 작으면 업데이트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새 주소 위주로 업데이트가 되기 때문에 기존 주소와 연계되지 않아 더 헷갈릴 수도 있다.

행자부 새주소정책팀 유상철 팀장은 "제도가 시행된 지 며칠 되지 않아 미흡한 점이 많다"며 "앞으로 5년 동안 시간을 두고 차츰차츰 다듬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101개 지자체 외 131곳은 2009년까지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부여하고 새주소는 2011년까지 옛주소와 병행해 사용하며 2012년부터는 새주소를 사용하게 된다.

한은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