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민간교류 기대에 "허탈감"|북한기독교인 입경 거부 원인과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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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 조선기독교도연맹 대표단의 갑작스런 서울방문 취소 통보는 기독교 관계자들을 당혹 속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북한측의 이번 방문 성사를 위해 단체의 명운을 걸다시피 하며 힘을 쏟아왔던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KNCC) 측은 충격과 절망을 넘어 극심한 허탈감에 휩싸인 모습이다.
북한 기독교도연맹 측의 서울방문보류 통지문이 통일원을 통해 KNCC에 전달된 것은14일 오후4시30분이었다. 단장 고기준 목사명의로 작성된 이 통지문의 요지는『남한 당국이 14일 오전 갑자기 서울방문 기록을 위한 촬영기자의 통행과 체류기간 서울-평양사이의 통신을 보장해달라는 우리 쪽 요구를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해왔으며 전례에 어긋나는 이 같은 부당한 조건에서는 KNCC 41차 총회참가를 위한 서울방문을 보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13일 오후 북한측이 보내온 방문단명단안에 수행기자 2명을 포함시킨 것은 그들이 예비실무 접촉과정에서 분명히 했던 KNCC와의 합의내용을 위반하는 것이다.
18일부터 열리는 평양 남북고위급회담관계로 그들의 직통통신회선 보장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등 우리 정부측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통신문을 보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KNCC 측은 『북한기독교인들의 서울방문보류에 결정적 빌미를 준 기자수행문제는 이미 양측 사이에 양해가 된 것이었다. 10일 오후3시 판문점에서의 실무접촉당시 우리는 역사적인 사건의 기록보존을 위해 기록 및 촬영요원 2명을 수행토록 해달라는 북한측 요구를 수락했다』며 정부와는 전혀 다른 설명을 하고있다.
정부와 KNCC측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기록 및 촬영요원을 기자로 간주해야할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양쪽이 서로 다른 해석에 매달려왔거나 예비접촉과정에서 이 문제를 너무 무관심하게 얼버무리고 지나쳤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요컨대 모호한 일 처리가「다된 밥에 코 빠뜨리는」결과를 빚은 것이다. 특히 신변보장각서까지 주고받은 마당에 돌출한 이런 결과는 우리정부나 북측 양쪽에 『처음부터 일을 되는 쪽으로 끌고 가려는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닌가』하는 의혹마저 증폭시키고 있다.
북한기독교도연맹의 서울방문보류는 그 원인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든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우선 80년대 들어서부터 10년 가까이 민족통일운동을 선도하면서 그 전초작업의 하나로 분단 47년만에 남북기독인간의 감격적 해후의 장을 마련하려던 KNCC가 혼신으로 추진한 이 일을 성사직전에 무산시킬 수밖에 없었다는데서 앞으로 운신의 폭에 적지 않은 제약을 받을 것이며, 따라서 KNCC에 대한 외상재점검 요구와 도전이 안팎에서 거세게 밀어닥치리라는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많다.
거기에다 최근 몇 년간 통일운동 및 남북접촉문제를 놓고 비교적 우호협조관계를 유지해왔던 정부와 KNCC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전과 같은 갈등관계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생겨나고 있다. 이 경우 KNCC의 대표성에 이의를 제기해온 개신교계의 보수교단이 통일운동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부상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남북교류문제에 대한 관용과 수용의 자세를 의심받는 부담을 안게됐다.
당사자의 한쪽인 북한 조선기독교도연맹 측은 한반도 통일문제에 깊이 간여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세계교회협의회(WCC)와 미·일·독·가 교회협동의 불신으로 앞으로의 행보에 큰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있다.
한편 KNCC는 북측의 방문보류통보에도 불구하고 연맹대표단을 맞이하기 위해 15일 오전 예정대로 판문점에 영접대표를 보내기로 했으며 이와 함께『방문이 끝내 성사되지 못할 경우 앞으로를 위해 실무접촉을 재개하거나 양측정부의 연락관을 통해 의사소통이 계속되기를 기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도 발표했다. <정교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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