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성 선거지침(선거혁명 이루자 주권의식 확립위한 캠페인:2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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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겉으론 “공명” 강조 속으론 “모든 수단 동원”/표리다른 정당의 이중성 고발을
노태우 대통령은 최근 거의 날마다 공명선거의 정착을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노대통령은 지난 8일 민자당 창당2주년 기념식에서 『14대총선을 역사상 가장 공명정대한 선거로 치르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천명했다.
여야 지도자들도 이 점에선 인식을 같이하고 공명선거실천의지를 다짐하고 있다.
김영삼 민자당 대표는 『깨끗한 선거풍토를 조성해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당이 솔선수범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김대중 민주당 공동대표도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고 앞으로의 민주화와 통일의 분기점이 될 이번 총선을 기필코 공명선거로 치러야 한다』며 『민주당도 정직한 정치실현을 위해 돈 안쓰는 깨끗한 선거에 앞정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정당에서 하고있는 행태는 최고지도자들의 공명선거실천의지를 무색케하는 사례들이 많아 유권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는게 정치평론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행정부측에서는 여당후보들을 돕기위한 우회적인 여러 방안을 실시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있는 점이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전국 일선 행정기관에서 계획에 잡혀있지 않던 공사의 기공식을 앞당겨 실시하거나 공무원들의 불필요한 현장출장이 잦아지고 있다고 벌써부터 야당측은 비난하고 있다.
한 중앙부처의 국장은 『앞으로 있을 잦은 출장계획에 벌써부터 짜증이 난다』고 실토했고 한 일선기관장은 『여당후보가 이것 저것 챙겨달라해서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기공식 앞당기기,공무원들의 여당지원 등이 오히려 여당측에 불리한 여론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이를 말리고 있다』며 『일부지역에서는 이와 역행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어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관변쪽의 여당돕기는 선거전이 다가올수록 심할 것이라는게 일반적 예측이라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정당쪽 사정은 겉과 속이 다른 행태여서 더욱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민자당이 8일 공천자들에게 배포한 「총선활동 준비지침」과 「홍보활동 실무교범」은 노대통령과 김대표의 공언과는 배치되는 것이어서 매우 대조적이었다.
지침과 교범의 내용은 법조항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법의 취지는 철저히 유린해도 좋다는 「정글의 법칙」이 강조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자당은 이 교범에서 『전화여론조사는 전체 선거운동의 범주에서 이뤄지도록 하라』『선거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성과는 달성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유의사항에서 이 방법은 상대후보 절대지지 지역에선 유리하나 『우리후보 지지지역엔 역효과가 날 우려가 있다』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선거법은 여론조사가 선거운동에 악용될 것을 경계,결과발표를 금지하고 있으나 전화여론조사 자체는 위법이라고 할수 없다. 그러나 민자당은 내부지침에서 손쉬운 전화여론조사를 선거운동의 방편으로 최대한 활용하라고 권유한 것은 발표만 하지 않으면 불법이 아니지 않느냐는 교묘한 탈법성의 조장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후보들이 너나 할것없이 특정 정치적 목적의 무작위 전화를 여기저기 해댈 경우 공정하고 명랑한 선거분위기는 커녕 혼탁·과열·불신을 조장할 가능성이 많다.
민자당은 이밖에도 지역내 택시기사 모임을 조직해 당의 호재를 널리 선전하고 악재의 공론화를 차단하라든가,유력인사들에게 선거등록후부터 선거일까지 득표지원요청을 완료하도록 하고 결과를 중앙당에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유력인사의 범주에는 필경 각급 행정기관 책임자도 포함될텐데 자칫 관권 선거개입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도 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선거지침도 낯부끄럽긴 마찬가지다. 같은날 후보들에게 배부된 지침서는 『편향적 내용의 설문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할 것』『상대방 운동원의 탈당을 유도할 것』『상대편의 감정적 대응을 유도할 것』 등 차마 공당으로서 하기 어려운 요구를 번연히 하고 있다.
여야가 겉으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공명선거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탈법 선거운동을 교사하는 2중적 양태에 속아 넘어갈 유권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여기는듯한 행태라 아니할 수 없다.
행정부와 여야정당의 이같은 탈법행태를 하루아침에 뿌리뽑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그런 탈법행위를 하는 관서나 공무원 및 후보자들과 정당을 각급 선관위·검찰·경찰 등 당국,공선협같은 민간감시기구나 언론기관에 고발하거나 제보해 조사를 받거나 탈법사실이 보도되도록 적극 동참한다면 그런 탈법행위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고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의 이같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식의 행태를 유권자들이 깨어있는 의식으로 감시하고,또 올바른 주권행사로 심판하는 길만이 공명선거를 정착시키는 첩경임에 틀림없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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