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감정 증거 채택안해/서울지법/“동일인감 주장 신빙성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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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무고혐의 피고인에 무죄선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허위감정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이 국과수의 감정결과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판결을 내려 주목되고 있다.
서울형사지법 9단독 이진성 판사는 11일 무고혐의로 구속기소된 박덕희 피고인(71·제일농약대표·서울 평창동)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검찰측이 증거로 제시한 인감·필적에 대한 국과수의 감정에 하자가 있어 이를 증거로 피고인을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가 재판부에 의해 증거로 채택되지 않은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위조했다고 주장하는 계약서의 인감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88년 사용 당시 인장의 테두리 세곳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나 1년뒤인 89년 6월 체결된 다른 계약서의 인장은 테두리가 완전히 이어져 있는 것처럼 나타나 있다』며 『이를 감정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형영씨(53)의 동일성 주장에도 불구,상식적으로 오래 사용해 테두리가 떨어져 나간 인장이 다시 원형으로 복원됐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국과수 인장 감정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필적에 대한 감정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에서 인감·필적을 감정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 김씨는 지난해 분신자살한 김기설씨가 남긴 유서가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씨의 필적이라는 감정을 했으며 이번 국과수 허위감정 의혹사건에서도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해주었다는 의심을 받고있다.
한편 검찰은 『법원이 국과수의 감정결과를 증거로 채택하느냐는 전적으로 재판부가 판단할 일이며 이번 판결이 김씨가 일부러 허위감정을 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피고인은 87년 12월 자기 소유인 서울 대치동 대지 1백50여평을 김모씨(44)에게 3년간 임대해준뒤 김씨가 임의로 지하 1층·지상 2층의 건물을 짓자 『김씨가 계약을 위반하고도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자신이 인장을 위조한뒤 가짜 계약서를 만들었다』며 김씨를 사기혐의로 고소했다가 오히려 서울지검에 의해 무고혐의로 구속기소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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