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비위한 긴급 진단(벼랑에 선 교육: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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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점수따기 굴레에 전인교육 “실종”/충동·이기적 인간 양산/경쟁서 뒤지면 쉽게 포기 탈선일쑤/객관식 학습평가로 사고도 단순화/가치관 부재
학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 사회를 지탱·발전시켜 나갈 기능과 덕목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학교는 입시를 표적으로한 지식주입교육에 치우쳐 가치교육의 부재라는 불구가 된지 오래다. 학교교육에 공동체의식과 다양성의 가치는 간과되고 더많은 점수따기라는 비정한 경쟁만이 강요되고 있다. 도시화·산업화로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또 민주화·다원화에 따른 다양성의 사회가 가속되면서 이와 관련된 가치관교육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져가지만 우리 학교는 손을 놓고 있다. 오히려 이기적이고 도구적인 가치를 지향함으로써 사회적인 가치혼돈을 키우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점수경쟁의 굴레는 학생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든다. 건전한 가치관이 형성될 계기도,여유도 주지 않는다. 모든 교육은 대학진학자를 위한 것이다. 성적이 떨어지거나 진학을 못하는 학생들은 원천적으로 교육으로부터 소외된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학생들은 공부를 해서 이겨야 한다는 당위와 그렇지 못한 현실사이에서 긴장·분노·좌절하게 되고 이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때 가출·자살·폭력등 각종 비행을 저지르게 된다.
매년 증가하는 청소년 범죄와 이들의 낮아지는 범죄연령은 우리학교 교육에서의 가치관 교육실패를 반영하는 하나의 증거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체육청소년부가 펴낸 『청소년 백서』에 따르면 88년에 4만2천18명이던 학생 범죄는 89년 5만2천4백9명,90년 5만5천26명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범죄동기도 90년의 경우 「우연」이 1만8천9백37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이 「유흥비 마련」 5천9백15명의 순으로 나타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별로 죄의식없이 우발적인 경향이 강한 것을 알 수 있다.
연령도 점차 낮아져 전체 범죄건수중 15세 이하가 86년 16.6%이던 것이 90년에는 17.3%로 높아졌다.
○학생 범죄 급증세
가치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학교교육은 또 학생들을 정신적으로 나약하게 만든다. 인내심이나 극기력이 약하고 남의 처지를 이해할줄 모르고 자신만 아는 극도의 자기중심적 이기주의 사고방식을 낳는다.
일선교사들은 요즘 아이들은 ▲웃어른을 봐도 인사할줄 모르고 ▲조그만 꾸중에도 교실을 뛰쳐 나가거나 반항하고 ▲점수를 더 받기 위해 커닝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자기 물건을 잃어버리고도 찾을 생각을 않는등 잘못된 사고방식을 지닌 학생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교사들은 또 학생들이 욕설을 함부로 하는등 말씨가 거칠고 걸핏하면 주먹다툼을 벌이는가 하면 비디오·만화등 선정적이고 충동적인 매체에 사로잡혀 진지하고 가치적인 것보다 코믹하고 자극·충동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교육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은 일차적으로 가정에 책임이 있고 부도덕한 사회분위기도 문제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한 학교교육의 실패에 있다고 주장한다.
잘못된 가치관은 대학진학에서도 나타나 학생도 학부모도 대학에 우선 붙고보자는 식의 학과·학교선택으로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대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이 많다.
○진학도 “출세 수단”
대학입학을 학문과 인격도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양대 한국교육문제연구소가 최근 서울·경기지역 20대이상의 사회인과 주부·대학생 3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교육문제에 관한 국민의식조사」에서 대학 진학이유를 묻는 질문에 「사회·경제적 지위획득을 위해」가 전체의 41.4%로 가장 높아 대학진학을 곧 신분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였다. 다음으로 「자아실현」 20.7%,「인격도야」 18.5%,「학문과 진리탐구」 17%순이었다.
연령별로는 40대가 47.6%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20대가 40.5%를 차지,우리나라 학부모와 학생들의 대학진학에 대한 가치관을 대변해주고 있다.
가치관 교육은 특정과목에 한정돼 있는게 아니라 전과목에 걸쳐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학교현장에서는 마치 도덕·윤리과목에서만 가치관을 가르치는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윤리과목을 통해 가치관교육을 접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국민학교에서 처음으로 도덕이 교과목으로 편제된 것은 3차 교육과정개정(1974∼80)이후로 주당 2시간씩 배정됐다.
제5차교육과정 개정에서는 3학년 이상은 변동이 없고 1,2학년은 바른생활에 통합됐다.
6차교육과정 개정에서는 4,5,6학년의 도덕시간은 주당 1시간으로 줄이는 대신 1,2,3,학년에 생활예절을 주당 1시간씩 신설했다.
중학교 과정에서는 현재 주당 2시간씩의 도덕과목을 가르치고 있으며 고교과정은 6차교육과정 개정에서 기존의 국민윤리를 윤리로 이름을 변경했다.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도덕과목은 내용이 정부시책 홍보나 이데올로기 주입이 많고 소재도 수준이 낮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교육관계자들은 가치관교육이 특정과목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과목을 통해 체험적이고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입시위주 암기식 평가체제에서는 학생들에게 교육이 근본적으로 의도하는 가치관을 심어주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한명희 동국대 교수는 『평가체제는 학습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용한 변수인데 현재의 객관식 위주 평가체제가 학생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즉 사고능력과 가치관은 깊은 연관이 있는데도 미리 정답을 주고 찾아내는 객관식 평가에 우리 학생들이 익숙해 있으므로 사고자체가 단순해지고 가치관도 자연 왜곡된다는 것이다.
○「반쪽교육」 벗어야
문용린 서울대 교수는 『정서함양을 통한 건전한 인격과 가치관의 형성은 우리 교육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영역』이라고 지적하고 『우리 교육이 올바로 서기위해서는 중·고등학교에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복수화해야 하고 정규과목중 가치관 형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편성,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너져가는 우리 교육을 세우는 길은 지식위주의 교육을 하루빨리 청산하고 교육의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가치관 교육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풀려 하지 않는한 우리 교육은 언제까지 「반쪽교육」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정재헌기자>
◎도덕·윤리교과 내용개선… 토론식 수업 바람직/조난심씨 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전문가 진단)
도덕적 위기 상황이라고 일컬어지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 학교교육은 무엇보다도 다음 세대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에 힘써야 한다.
특히 다음과 같은 현대 사회의 추세에 비추어볼때 학교에서의 가치관 교육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첫째,점차 학교는 다음 세대에게 그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중심적인 공동체로 자리잡게 된다. 전통적으로 한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전달의 매체였던 가정과 촌락공동체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와해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추세로 볼때 어린이들에게 학교는 공동체적 생활과 가치관 전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둘째,사회가 점차 민주화·다원화 되면서 각 집단에서 추구되는 가치도 다양화되고 있다. 집단간에 상호이해와 조정이 가능하도록 공통된 기반을 가져야 하며 그 논리와 기반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학교교육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분명 가치관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가치관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으로,암기해서 시험에 대비해야할 단순정보로서 주어지고 익혀질 뿐이다.
학교생활자체도 교장→교사→학생이라는 수직적인 권위주의 체제를 형성하고 있어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통해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점이 바로 우리 교육이 가치관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하는 이유다.
가치관교육의 초점은 교사의 시각으로부터 학생의 시각으로 전환돼야 한다.
지금 교육을 받고 있는 세대들이 살아갈 사회에 맞추어 교육해야지 교사자신의 가치관,혹은 그 이전의 사회에서 파생되었던 가치관을 강요하고 주입하는 것은 교육적으로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치관 교육이 이러한 방향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이를 교육현장에서 실현가능하도록 해주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첫째,가치관 교육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도덕·국민윤리나 사회과목의 교육내용과 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살아가야할 학생들은 다양한 개인들간,집단들간에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충돌하고 있는 현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교육내용을 다루는 방법으로 「토론식 수업」이 강조되고 있다. 하나의 쟁점을 갖고 여러 의견을 나눔으로써 다양한 의견이나 판단이 한 사회내에 존재함을 깨달을때 장차 제기되는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둘째,가치관교육은 수업시간에 한정돼서는 곤란하다. 학교생활 전체가 가치관 교육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전원이 학교경영에 참여,학생들이 규칙의 제정에 참여함으로써 규칙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도록 한다. 즉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가치관을 정립시켜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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